[살며 사랑하며-강은교] 시금치
입력 2014-02-12 01:33
시금치가 너무 맛있었다. 몇 접시나 비웠다. ‘시금치가 이렇게 달콤하다니….’ 일행들도 모두 이구동성으로 시금치 칭찬이었다. 밥상에서 시금치가 마치 정신이라도 나는 것처럼 더 새파래지는 것 같았다. 섬 여행을 하던 중 만난 시금치, 그런데 그 시금치에 대해서 어민 한 분이 넌지시 말했다. ‘올해는 그렇게 맛있는 게 아니랍니다, 해풍을 제대로 못 맞아서 단맛이 그전 같질 않아요’ 그런다.
아마 너무 보호를 받아서 그런 게 아닐까. 블루베리도 그렇다고 하지 않는가. 핀란드 블루베리가 노화방지에 좋다고 잘 팔려서 너도나도 재배하였으나, 귀한 대접을 받으며 자라난 그 보랏빛 열매는 훨씬 약효가 떨어져서 영 팔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왜 그럴까. 그 이유를 식물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블루베리의 노화방지 효과는 블루베리의 열매 속에 있는 안토시아닌이란 물질 때문인데, 이 안토시아닌은 험준한 비탈에, 햇빛도 잘 안 드는 음지에 사는 블루베리에게 생긴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약효가 있는 블루베리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야생 블루베리를 재배 블루베리가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다는 걸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살아남기 위해 블루베리로선 최선의 힘인 안토시아닌을 몸속에 만들어낸 것이었다. 즉 그것의 함량은 바로 그것의 ‘고생의 정도’였던 것이다.
안토시아닌을 요즘의 우리 사회는 너무 만들려 하지 않는 것 같다.
아이들의 문제만 해도 그렇다. 웬만한 일에도 쉽사리 절망하고, 참을성이 없으며 키와 몸무게는 전반적으로 커졌으나 체력은 없다고 한다. 심지어는 봉사활동이 대학 시험에서 중요한 성적 산출의 요소가 되면서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나, 진정한 봉사심은 의문에 부쳐질 수밖에 없다.
비록 아이들의 문제뿐인가. ‘한 공기의 밥’을 고맙게 여기지 않으며 한 벌의 옷의 아까움을 모른다. 유실물센터에 가면 잃어버리고 찾아가지 않은 물건들이 수두룩하다.
그런 ‘귀한 보호’에서 안토시아닌이 만들어지진 않을 것이다. 안토시아닌 영양주사가 있을지 모르나, 스스로 만들지 않은 안토시아닌이 무슨 효험이 있을까. 안토시아닌을 만들어주는 사회는 요령의 사회가 아닐 것이며 결국 정직의 사회가 될 것이다. 일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사회가 될 것이다. 1%만 잘 사는 사회는 결코 되지 않을 것이다. 꿈같은 이야기인가.
강은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