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성태윤] 오바마의 사다리
입력 2014-02-12 01:34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13년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는 취임연설에서 “절망적인 가난 속에 태어난 어린 소녀도 그녀가 미국인이기에 다른 사람과 같은 기회를 가지는 것이 우리의 원칙이다”라고 밝히며 ‘기회의 사다리’를 강조했다.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중산층을 살리고 소득불평등을 해소한다는 목표다.
이러한 목표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정책을 이끌고 있는데, 저소득층을 포함하는 교육기회 확대, 직업훈련 강화, 그리고 사회의 개방성을 높이는 이민법 개혁 등이 그 예다. 물론 이러한 ‘기회의 사다리’를 만드는 핵심은 교육이다. 현대경제학의 성장이론은 투자를 통한 물적 자본축적, 교육을 통한 인적 자본축적, 그리고 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을 강조한다. 결국 오바마 행정부가 달성하려는 것은 교육기회 확대로 소득불균형을 해소하는 가운데 경제의 생산성을 높이고 추가로 필요한 노동력은 이민으로 확보하는 방향이다.
정책의 기본방향은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소득불평등과 생산성 저하 그리고 출산율 저하로 고민하는 우리에게도 유사하게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정부에서 발표한 ‘대학구조개혁’ 같은 교육정책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과 거리가 먼 처방이 등장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대학구조개혁안’은 기본적으로 저출산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에 맞춰 대학 입학정원을 줄인다는 것인데, 제시된 대학구조개혁안은 학생들이 진학하고 싶은 대학 정원까지 일률적으로 감소시켜 오히려 교육기회를 축소시키고 있다. 원래 선제적인 구조조정은 문제가 있는 인력이나 기업을 사전에 정리함으로써 멀쩡한 다른 곳까지 영향이 파급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지, 일률적 규제로 문제가 없는 곳까지 정원을 줄여 교육기회 자체를 축소시키는 것은 해당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여건이 어려운 곳은 정원 조정으로 사전에 문 닫게 해야 하는가. 그럴 필요도 없다. 정원을 사전에 억지로 조정할 것이 아니라 양질의 교육여건을 충분히 갖추지 못하고 학생이 오지 않는 곳만 정부의 지원을 끊고, 시장시스템을 통해 자율 퇴출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흔히 너무 많은 사람이 대학에 가는 것이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대학에 많은 사람이 가는 것 자체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만약 대학이 충분히 양질의 교육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면 전 국민이 대학에 가고 외국인으로 학교의 전체 인원을 채워도 문제될 게 없다.
예를 들어 미국 경제의 미래에 대해서는 낙관론이 강하게 존재하는데, 그 기본에는 청년층 인력을 이민으로 받아들이는 젊은 인구구조가 있다. 그런데 미국의 경우 사회적으로 정착 가능한 기술과 지식을 갖춘 젊은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주요 채널 가운데 하나가 대학교육이다. 더구나 최고 명문대학들만 그러한 채널로 기능하는 것도 아니다. 많은 지역기반 대학들이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고 인구를 늘리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정상적인 학사관리가 이뤄지고 국내 또는 외국인 학생들이 입학을 원하는 학교라면 국내 학령인구가 줄어든다는 이유로 그러한 대학을 임의로 문 닫게 할 이유가 없다. 결국은 많은 대학을 양질의 교육기관으로 만드는 것이 정책의 원칙이어야 한다. 오히려 대학별 경쟁력에 관계없이 모든 대학의 정원을 사실상 일률적으로 조정하는 현재의 대학구조개혁안은 대학들이 이러한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지 않고도 생존하게 만드는 보호막을 만들 수 있어 정책목표가 무엇인지 불분명하다.
축소지향적인 태도를 버리고, 폭넓고 우수한 교육기회를 확대하고 이를 장려하는 형태로 고안된 교육정책은 사회 구성원에게는 ‘기회의 사다리’를 개인적으로 제공할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고민인 생산성 저하와 소득불평등 그리고 저출산에 따른 인구구조 악화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사회적인 ‘해결의 사다리’로도 기능할 수 있다.
성태윤(연세대 교수, 경제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