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홀스또메르’ 주연 유인촌 전 문체부 장관… “어떻게 늙을 것인가” 질문 던지다

입력 2014-02-11 01:32


유인촌(63)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연극 ‘홀스또메르’ 무대로 돌아온다. 28일부터 다음달 30일까지 한 달간 서울 영등포구 영중로 CGV신한카드아트홀 무대에 서는 것이다. 2005년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이 작품 공연을 끝으로 그는 연극 무대를 떠났다. 대신 그의 이름 뒤에는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를 시작으로 문체부장관, 대통령실 문화특별보좌관 등의 이력이 추가됐다. 2012년 낭독극 ‘파우스트-괴테와 구노의 만남’의 연출과 주연을 맡아 연극계로 돌아왔지만 대표작품 주연을 맡아 관객 앞에 선다는 점에서 이번이야말로 진정한 복귀 무대라 할 수 있다. 한창 연습 중인 그를 서울 마장로 축산물시장 입구 상가 3층에 위치한 연습실에서 만났다.

소감부터 물었다. “‘다시’라기 보다 ‘새로’ 시작하는 건데, 지금부터 열심히 해도 시간이 모라자요. 초심으로 돌아가서 처음 연극 시작할 때처럼 해야죠.”

공백기가 길었는데 두렵진 않을까. “연기는 술 담그는 것처럼 오랜 숙성이 필요하고, 그게 덜 익어서 나오면 망하는 거예요. 공직에 있는 8년간 연극을 안 했어요. 내가 설익은 연기를 보여주면 어떻게 될까, ‘저 사람 옛날엔 저렇게 연기 안했는데 이제 감 떨어졌구나’ 그런 말 듣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있어요.”

그는 2011년 장관직에서 물러난 뒤 공무원 때를 벗기 위해 애썼다고 한다. “4년쯤 됐는데 이제 좀 자유로운 모습으로 탈바꿈 한 것 같아요. 그동안은 사람들도 그렇게 안 봐주고, 나도 행동이 그랬고. 정시에 출퇴근하고 단순화된 공무원에서 벗어나 외연을 넓히고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바꾸려고 노력했죠.”

주로 소년원과 청소년쉼터 등을 찾아다니며 청소년 예술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지난해 11월 극단 광대무변 단원들과 함께 전남 해남을 찾아가 공연을 했다. 강원도 봉평에 사둔 폐교를 문화예술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포크레인 자격증도 땄다. “5년, 10년 걸리더라도 자연친화적으로 문화예술을 접하면서 힐링할 수 있는 극장을 짓고 싶어요. 직접 해 볼 생각에 자격증을 땄죠.”

레프 톨스토이의 중편소설 ‘어느 말 이야기’를 각색한 이 작품은 그에게 무척 각별하다. 1997년 국내 초연을 시작으로 2000년 2003년 2005년까지 무대에 올려질 때마다 그가 주연을 맡았다. 그 때마다 호평을 받았다. ‘얼룩빼기’로 태어난 말 홀스또메르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얼룩빼기라는 이유로 천대받던 홀스또메르가 그의 진가를 알아주는 세르홉스끼 공작을 만나 경주마로 성공하지만 다시 버림받고 쓸쓸히 죽음을 맞는 이야기를 통해 인생을 말하는 작품이다. TV 드라마와 연극 무대를 통해 대중들에게 사랑받다 관직에 진출한 뒤 여러 논란을 빚고, 다시 무대로 돌아온 그의 삶과 묘하게 겹치는 대목이 많아 보인다.

“인생은 물론 어떻게 늙어갈까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에요. 내가 46세에 초연을 했으니까 어찌 보면 그 나이에 이 작품을 한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죠. 그 나이에 ‘중후하게 늙을 것인가, 초라하게 늙을 것인가’ 같은 질문을 던졌으니 연세든 관객 입장에서 얼마나 가소로웠을까 싶어요. 이 배역은 나이가 들수록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올해는 ‘햄릿’을 공연하고 싶어요. 더 늙기 전에 ‘햄릿’ 역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지난해 명동예술극장에서 정보석씨가 한 ‘햄릿’을 봤는데 그보다는 좀 더 전통 스타일로 하게 되지 않을까요.”

현장과 문화행정까지 두루 경험한 그는 후배 연극인들에게 아무런 희망도 주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평생 여기에 몸 바치면 명예를 얻든, 돈을 벌든, 존경을 받든 해야 하는데 어떤 것도 못 주니 안타까워요. 가령 오태석, 이윤택 선생님 같은 분들께는 일가를 이룬 것에 대해 뭔가 보장을 해드려야 하는데 말이죠. 장관하는 동안 국립극장장, 현대미술관장 등 상징적인 자리의 직급을 높여서 세계무대에 내놔도 손색없는 분들을 모시고 싶었는데 그걸 못 했어요. 장관직에 후회는 없지만 이건 좀 아쉽습니다.”

이제 관직을 떠나 후회 없이 무대에 오를 준비가 됐다는 배우 유인촌. 시험 무대에 오르는 그를 관객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