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신종수] 살처분의 추억
입력 2014-02-11 01:33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로 닭과 오리가 대규모로 살처분되는 것을 보면서 시골집 마당에서 키우던 닭이 떠올랐다. 마당에서 놀고 있는 닭 중에 한 마리를 골랐다. 꼬꼬댁거리는 닭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사실 그전까지 한번도 닭을 잡아본 적이 없었다. 눈을 껌벅이던 닭이 목을 살짝 비틀자 살짝 눈을 감았다. 윙크를 하는 것 같았다. 결국 닭은 어머니가 처리했다. 닭 한 마리도 잡기 힘든데 살처분에 동원되는 방역 당국 관계자들의 노고와 트라우마가 어떨지 짐작이 간다.
지난달 AI가 발생한 이후 10일까지 전국 154개 농장에서 오리와 닭 316만6000마리가 살처분됐다. 가축전염병예방법에 AI는 ‘1종 가축전염병’으로 규정돼 있기 때문에 발생한 농장으로부터 3㎞ 안에 있는 가축은 살처분할 수 있도록 돼 있다. AI가 발생한 농가는 살처분을 통해 실거래가의 80%를 보상받고, 주변 농가의 예방적 살처분은 100% 보상받는다. AI에 감염된 닭은 물론이고 감염되지 않은 닭도 예방 차원에서 무조건 죽여 묻는 과정에서 트라우마가 생긴다.
친환경적으로 사육되는 충북 음성의 국내 1호 동물 복지농장의 건강한 닭들에 대해서도 살처분 지시가 내려졌다. 닭에 대한 홀로코스트다. 닭을 잡아먹을 수 있지만 그러면 보상을 받지 못한다. 그런가 하면 살처분 대상에 포함이 안 돼 오히려 손해를 보는 모순된 상황도 발생한다.
AI대책은 묻지마식 살처분 뿐
정부가 AI와 관련해 내놓은 대책은 단순하다. 원인은 철새, 대책은 살처분이다. 철새를 모두 잡아 살처분할 수 없는 노릇이니 애꿎은 농가의 닭과 오리 등만 묻지마식 대량학살의 대상이 됐다. AI 발생 원인이 철새라면 방역 당국은 면피가 된다. 그러나 전염병에 취약한 공장식 축산 정책이 AI의 원인이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공장식 축산의 경우 닭 한 마리가 차지하는 공간은 A4용지 한 장도 안 된다. 좁은 공간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배설물과 먼지 속에서 산다. AI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은 네팔, 멕시코, 캄보디아, 베트남, 중국 등과 함께 AI 발생 건수가 높은 국가에 속한다. 대부분 비위생적인 밀집 축산을 하는 곳들이다.
공장식 축산은 저비용 대량생산을 위한 수단이다. 하지만 항생제를 많이 먹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닭이 소비자들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도 생각해야 한다. 결국 동물복지는 인간복지와도 연결된다. 친환경적인 제품을 찾는 소비자, 친환경적인 제품을 생산하는 축산농가가 많아지도록 정부 정책을 펴야 한다. 친환경 제품 가격이 비싸다면 평소 먹는 치킨 양을 절반으로 줄일 필요도 있다. 선진국 문턱에 들어선 우리나라도 이제 과도한 육식문화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싼 치킨을 좋아할수록 공장식 축산은 불가피하다. 영양실조보다 영양과잉과 비만을 걱정하는 시대에 ‘착한 치킨’만 찾을 것인가.
동물복지는 사람복지와 연결
살처분 방법도 개선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이산화탄소로 질식시키는 방식이 도입됐지만 그동안 마대자루에 담아 생매장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살처분 작업에 여직원은 투입하지 않고 있다. 그만큼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많다는 얘기다. 침출수로 인한 환경오염 우려도 여전하다. 일부 지자체만 마대자루 대신 FRP 탱크에 넣고 매몰 처리하고 있을 뿐이다.
이번에 발생한 H5N8형 AI 바이러스의 경우 백신 접종으로는 예방에 한계가 있어 살처분 외에 방법이 없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그러나 구제역의 경우 얼마 전까지 모조리 살처분했지만 지금은 백신 접종으로 전환했다. AI도 다른 대안을 고민해 볼 때가 됐다.
신종수 사회2부장 js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