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시대, 패러다임을 바꾸자-⑤ 3% 성장시대의 경제생활 패턴] 자산의 부동산 비중도 줄여라
입력 2014-02-06 01:36
해마다 평균 6.3%의 고도성장을 이어가던 199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인의 소비 패턴은 크게 변했다. 마이카 시대가 열렸고, 무선호출기에 이어 휴대전화도 빠르게 보급됐다. 신도시 개발이 본격화하면서 주거면적도 커졌고, 패밀리레스토랑이 등장하면서 외식문화도 바뀌기 시작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고성장의 시계는 멈췄다. 가계 역시 저성장 시대에 맞는 소비 패턴과 자산관리 방식을 요구받고 있다.
◇훌쩍 늘어난 경직성 경비=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잠시 주춤했지만 2000년대 초반 IT 벤처 붐에 신용카드 보급률까지 높아지면서 가계소비는 지속적으로 늘었다. 특히 교통비와 통신비가 증가했다. 80년대까지 상당수 가계의 소비 항목에 아예 없었던 차량유지비와 휴대전화요금은 이 시기에 가장 빠른 지출 증가세를 보였다. 통계청에 따르면 가계당 통신비는 2000년에 비해 91.8%나 늘어 가계당 월 평균 17만원에 달한다. 외식비 역시 같은 기간 배 가까이 증가했다.
문제는 저성장·저금리·고령화 시대를 맞아 지출 규모를 줄이고 싶어도 고성장기를 거치며 변화된 소비행태가 쉽게 바꾸기 힘든 상황이 됐다는 점이다.
최성환 한화생명 은퇴연구소장은 5일 “교통비, 통신비, 외식비 등 3대 항목은 경직성 경비로 분류되며 세금이나 연금, 보험료 등 금융 관련 고정 지출도 쉽게 줄이기 힘든 항목”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가계지출에서 경직성 경비 비중이 커지면서 재량소비 여력이 줄고 있다”며 “평균 수명이 늘고 있지만 여윳돈이 부족해 노후 준비가 힘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여전히 높은 부동산 비중=고성장 시대에 집값은 급등했다. 자산가격 폭등에 대한 주변 경험을 목격한 사람들은 집값이 더 뛸 것으로 생각하고 무리하게 빚을 내어 집을 사기 시작했다. 당시 벌어서 빚을 갚는 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또 보유한 부동산 가치가 뛰자 중형차나 외제차로 바꾸는 수요와 사교육비가 급등했다.
2000년대 초반 85%에 달했던 부동산 등 실물자산 비중은 최근 주택가격 하락으로 다소 축소됐으나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유럽의 경우 1인당 국민소득 1만∼2만 달러 시대에는 가계의 전체 자산 중 부동산 비중이 70%에 달했다. 하지만 3만 달러를 넘어서면서 부동산 비중은 크게 줄어 최근에는 60%를 밑돌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가계자산 구조에서 부동산 등 비금융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75.1%로 미국(31.5%) 일본(40.9%) 영국(50.1%) 등 선진국보다 높다. 하지만 자산 변화를 압축해서 경험했던 세대들은 고성장 시대 향수에 쉽게 부동산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KB금융 경영연구소 손은경 연구원은 “한국의 경제 규모에 비해 국내 가계가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 가치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며 “소득 대비 높은 주택가격 부담은 주택매수심리를 위축시켜 향후 추가 주택가격 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손 연구원은 “정부의 노력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일본이나 미국과 같이 부동산 버블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으나 장기적 하락 국면이 지속될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가계 구조조정 필요=이미 소비는 둔화세를 보이고 있다. 이를 단순한 경기 침체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이 아니라 저성장 시대를 맞아 가계 구조조정이 시작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전문가들은 저성장 시대를 맞아 본격적인 가계의 자발적 소비 구조조정과 함께 합리적인 자산관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고성장 시대 향수를 떨쳐야 한다고 제안한다. 물가상승률보다 월급이 더 빠르게 오르던 시절 집을 사두면 자산가치가 몇 년 새 2∼3배로 치솟던 시대는 이제 끝났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베이비붐(1955∼1963년생) 전후 세대다. 이들은 자녀에게 부동산을 유산으로 물려줘야 한다는 의식이 강해 가계의 자산 구조조정을 더디게 하는 주역으로 꼽힌다. 이들은 또 부모와 자녀를 함께 돌봐야 하는 마지막 세대로 자산관리에 여유가 없다는 약점도 있다.
한화생명 최 소장은 “베이비붐 세대 등은 부채, 자산, 소득, 지출 현황을 투명하게 공개한 뒤 부모, 자녀와 함께 제대로 된 소비와 자산관리를 논의하는 이른바 ‘3G(세대) 은퇴설계’가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고령화 시대에 대비해 연금상품 등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특히 30·40대는 예금과 채권 등 안전자산 외에도 펀드 등 위험자산 운용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권유한다. 이미 줄이기 힘든 경직성 경비가 늘어난 만큼 크지 않아도 소득을 늘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녀교육 부담이 줄어든 50대 전업주부 역시 적극적으로 경제활동에 뛰어드는 노력이 대표적이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