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의 세상’은 눈처럼 깨끗할까… ‘소년 정도전’의 고향 단양 도담삼봉
입력 2014-02-06 01:35
요즘 KBS 대하사극 ‘정도전’이 인기다. 삼봉(三峰) 정도전(1342∼1398)은 위화도 회군 이후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한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하는 데 앞장선 인물이다. 드라마가 인기몰이를 하면서 단양팔경 중 제1경인 충북 단양의 도담삼봉(嶋潭三峰)이 새삼 주목 받고 있다.
도담삼봉은 ‘도담’이라는 마을에 있는 3개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바위를 일컫는다. 외가인 단양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낸 정도전은 도담삼봉의 절경에 매료돼 ‘삼봉’을 호로 삼았다고 한다.
도담삼봉이 위치한 도담나루터는 조선시대에 죽령을 넘은 선비들이 한양으로 가는 나룻배를 타던 곳으로 송파나루나 뚝섬까지는 3∼4일 거리. 지금은 충주댐이 들어서면서 뱃길도 막히고 물길도 달라졌지만 남한강 수운이 번성했던 시절에는 도담나루터가 소금배로 흥청거렸다고 한다.
도담상봉은 삼도정으로 불리는 정자가 위치한 남편봉을 중심으로 상류의 첩봉과 하류의 처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형상을 두고 아들을 얻기 위해 첩을 둔 남편을 미워해 돌아앉은 본처의 모습이라는 스토리가 더해져 미소를 머금게 한다. 영남과 한양을 오가는 시인묵객들에게 도담삼봉의 기이한 모습은 문학적 상상력을 한껏 불러일으켰다. 삼봉 정도전을 비롯해 퇴계 이황,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 조선시대 문인들이 도담삼봉을 주제로 남긴 시문이 131수나 전해오는 까닭이다. 단원 김홍도를 비롯해 최북 이방운 등 화가들도 질세라 도담삼봉을 화폭에 옮겼다.
기행문도 잇따랐다. 1823년 봄에는 과거에 낙방한 선비 한진호(훗날 영의정에 추증)가 뚝섬에서 나룻배를 타고 남한강을 거슬러 올라 단양 일대를 둘러보고 기행문 ‘도담행정기’를 집필했다. 70여년이 흐른 1895년에는 벽안의 여인이 역시 나룻배를 타고 도담상봉을 찾았다. 그녀는 영국 왕립지리학회 최초의 여성회원으로 ‘은둔자의 나라’ 비경을 찾아 나선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었다.
“한강의 미(美)는 내가 이제야 보게 된 가장 아름다운 강마을인 도담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넓게 뻗어있는 깊은 강과 높은 석회 절벽, 그것들 사이의 푸른 언덕 위에 그림 같은 낮은 처마와 갈색 지붕의 집들이 지어져 있었다. 또 강의 입구로 인도해 주는 세 개의 그림 같은 뾰족한 삼각바위가 있었다.” (비숍의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 중에서)
그녀는 봄에 한양에서 나룻배를 타고 남한강을 거슬러 올라 충북 단양에 도착했다. 옥순봉과 구담봉의 비경에 감탄한 그녀는 두 바위봉우리가 ‘천국의 향기’와 같다고 묘사했다. 그리고 도담삼봉을 품은 도담마을에 이르러선 ‘이제야 보게 된 가장 아름다운 강마을’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남한강 푸른 물에 발을 담근 도담삼봉은 계절마다 독특한 산수미를 연출해 추사 김정희는 “도담삼봉의 품격과 운치는 신선 그 자체”라고 상찬했다. 도담삼봉이 가장 아름다운 때는 초가을에 남한강 물안개가 아침햇살에 화염처럼 물든 풍경. 그러나 요즘처럼 꽁꽁 얼어붙은 남한강을 거울삼아 나르시스처럼 제 모습을 비춰보거나 눈을 뒤집어 쓴 모습은 또 다른 운치가 있다.
도담마을은 현재 27가구가 사는 육지 속의 섬이다. 주민들이 나들이를 가거나 아이들이 학교에 가려면 21세기를 살아가는 요즘도 나룻배를 타야 한다. 그래서 얼음이 꽁꽁 얼면 나룻배를 탈 수 없기에 뱃사공은 수시로 오가며 얼음이 얼지 못하도록 물길을 만든다.
도담마을 앞 남한강 절벽에는 단양팔경 제2경인 석문(石門)이 위치하고 있다. 도담삼봉에서 상류로 200m 정도 거슬러 올라 산을 오르면 동굴처럼 생긴 돌문이 나타난다. 석회동굴이 무너진 후 동굴 천장의 일부가 남은 것으로 석문을 통해 바라보는 남한강과 도담마을이 액자 속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도담삼봉에서 다시 단양읍내로 나와 하얗게 얼어붙은 남한강을 거슬러 오르면 강원도 영월 경계에서 온달관광지를 만난다. 비숍이 도담삼봉에서 나룻배를 타고 남한강을 거슬러 오르다 거센 급류를 만나 여행을 중단한 곳이다. 강변에는 대하드라마 ‘정도전’ 촬영장인 드라마 세트장을 비롯해 온달동굴, 온달산성이 남한강을 벗하고 있다.
드라마 세트장은 드라마 ‘연개소문’을 비롯해 ‘태왕사신기’ ‘일지매’ ‘바람의 나라’ ‘천추태후’ ‘근초고왕’ ‘광개토대왕’ 등 수십 편의 영화와 드라마가 탄생한 곳. 중국 수나라와 당나라의 건축물을 비롯해 고려시대의 건축물 등 50여동이 실물과 비슷하게 지어져 시공을 넘어 여행을 온 듯 이채롭다.
온달동굴에서 산길을 30분쯤 오르면 비숍이 ‘매우 오래된 요새’라고 소개한 온달산성이 남한강을 굽어보고 있다. 온달산성은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 설화로 유명한 고구려 명장 온달장군이 신라에 빼앗긴 남한강 유역을 되찾기 위해 쌓았다고 전해오는 산성이다. 683m 길이의 반월형 성곽에 오르면 북으로 산자락을 휘돌아 가는 남한강 물줄기가 시원하다.
육쪽마늘 주산지인 단양은 마늘음식이 유명하다. 단양읍내의 성원마늘약선요리(043-421-8777)는 인공조미료 대신 100여 종의 효소와 한약재로 맛을 내는 음식점으로 마늘요리와 약선요리를 접목했다. 더덕구이 마늘청국장 아로니아떡갈비 등이 나오는 아로니아정식이 대표 메뉴. 다누리센터 옆에 위치한 돌집식당(043-422-2842)은 수육 더덕 양념마늘을 상추에 싸서 먹는 마늘삼합을 비롯해 곤드레마늘솥밥, 튀김마늘, 구운마늘, 흑마늘이 맛있다.
단양=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