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국에 몸 낮추던 乙신세서… 몸집 불려 甲이 된 ‘공룡 기획사’

입력 2014-01-24 01:33 수정 2014-01-24 10:25


엔터테인먼트 산업 판도 변화… 득과 실은

최근 인터넷에는 ‘SM 3대 미녀’라는 검색어가 상위권에 올랐다. 배우 이연희, 고아라, 소녀시대 윤아가 그 주인공. 그런데 잠깐! SM은 아이돌 소속사인데 왜 이연희, 고아라가 거기에? 하실 분도 있겠다. 연예계 대형 기획사가 변하고 있다. 사업 영역을 넓히며 가수뿐 아니라 배우도 관리하는 것은 물론 콘텐츠 제작과 유통까지 나서고 있다.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인기 뮤지션, 배우들을 보유하고 있는 중소형 기획사에 투자하거나 레이블(장르가 유사한 뮤지션들을 모아 상표화 하는 것) 체제로 회사를 합병한다. 몸집을 불려 ‘공룡’이 된 기획사들의 출현으로 한국 대중문화계가 겪을 득과 실은 무엇일까.

◇대형 기획사, 가수-연기자 영입에 콘텐츠 제작까지 넘보다=싸이(본명 박재상·36), 빅뱅 등의 소속사인 YG엔터테인먼트는 지난 20일 “차승원(43) 장현성(43) 임예진(50)을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1990년대 후반 힙합 그룹 지누션의 성공 이후 주로 흑인 음악 장르의 뮤지션을 관리해 온 YG가 본격 배우 기획사로도 지평을 넓힌 것이다. YG 관계자는 23일 “할리우드에 진출한 한국 애니메이션 ‘넛잡’의 제작사에도 지분을 확보하는 등 영상 제작업에도 참여하고 있다”며 “배우 관리를 통해 발생하는 시너지 효과에 방송 콘텐츠 제작 역량도 강화시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발 앞서 배우 관리를 시작한 SM엔터테인먼트는 계열사 SM C&C를 통해 콘텐츠 제작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현재 방송 중인 KBS 드라마 ‘총리와 나’와 예능 ‘우리동네 예체능’, MBC ‘미스코리아’ 등이 이 회사 작품이다. 이들이 만드는 콘텐츠는 기획사 출신 배우들이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대거 등장하는 것은 물론, 신인들의 데뷔 무대가 되기도 한다. 주로 배우 관리를 해왔던 iHQ(싸이더스)의 경우 지난해 9월 그룹 비스트, 포미닛이 소속된 큐브엔터테인먼트의 지분 50.1%를 인수하면서 가요계에도 입지를 구축했다.

◇레이블 체제로 가지 뻗는 기획사=기획사 내에 멀티 레이블 체제를 만들어 중소 기획사들과 합병을 추진하는 기류도 있다. 지난달 18일 가수 아이유(본명 이지은·20) 등이 소속된 로엔엔터테인먼트는 걸그룹 씨스타, 가수 케이윌(본명 김형수·32) 등의 스타쉽 엔터테인먼트 지분 70%를 매입하면서 사실상 인수절차를 밟았다. 로엔은 지난해 9월 기존 소속가수인 ‘로엔트리 레이블’과 별개로 작곡가 신사동호랭이(본명 이호양·31)를 대표로 한 ‘콜라보따리 레이블’을 설립, ‘멀티 레이블 체제’로 전환한 바 있다. 로엔 관계자는 “멀티 레이블 체제에선 각 아티스트의 음악적 색깔을 살리면서 완성도도 높일 수 있다”며 “중소 기획사의 아티스트들도 시장 진출이 용이해져 한류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언급된 큐브는 레이블 ‘에이큐브’ ‘큐브DC’ ‘뮤직큐브’를 운영하면서 프로듀서와 작곡·작사가까지 영입해 음악의 전문성을 강화했다. SM C&C도 지난해 8월 아이돌 그룹 인피니트와 록밴드 넬 등이 소속된 울림엔터테인먼트를 흡수하면서 레이블 사업을 시작했다. 인피니트의 경우 지난해 시작된 월드투어 콘서트(아시아, 미국, 남미, 유럽, 중동 등 21개 도시)에서 SM의 사업망과 한류 사업 노하우가 주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록밴드 넬과 SM의 ‘색다른 조합’이 어떤 시너지 효과를 보이게 될지에 기대감도 커진다.

◇“사업 다각화로 안정성 키운다” VS. “거대 권력 우려”=레이블 사업 열풍은 콘텐츠의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사업도 다각화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대중문화 시장이 커지고 노하우가 쌓여 생긴 기획사들의 ‘진화’라는 설명이 많다. 반면 그간 방송국에 배우들을 기용해 달라는 부탁을 해왔던 ‘을’에서 콘텐츠를 좌지우지하는 ‘갑’으로 역할이 바뀐 이들이 시장을 잠식할 거대 권력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서정민갑 대중문화평론가는 “아이돌 가수에 의존했던 기획사들이 다양한 수익모델을 찾게 돼 마니아층과 대중들을 모두 아우를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며 “변환기를 거쳐 기획, 제작, 유통까지 하게 된 회사들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게 되느냐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한동윤 평론가는 “영세한 규모의 기획사들은 결국 잠식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며 “기획사에서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다보면 아티스트들은 원치 않은 분야로도 소비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