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차기 CEO 권오준 낙점 의미·배경… “기술혁신서 미래 찾자” 내부 승진 전통도 이어
입력 2014-01-17 02:33
포스코 이사회가 16일 철강기술 전문가인 권오준 기술부문장(사장)을 차기 최고경영자(CEO) 후보로 낙점한 것은 ‘기술혁신에서 회사의 미래를 찾으라’는 주문으로 해석된다. 포스코는 2000년 민영화 이후 네 차례 모두 내부 사장이 CEO로 승진하는 전통을 갖게 됐다.
권 사장은 비교적 늦게 포스코 근무를 시작했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난 뒤인 1986년 포스코 연구기관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에 입사했다. 전문 엔지니어가 아닌 본격적 기업인으로서의 포스코 근무는 1996년부터다. 관(官)의 성격이 강했던 공기업 시절은 거의 겪지 않은 셈이다. 따라서 “때가 덜 탔다”는 평가도 있다.
권 사장이 CEO 후보가 된 것은 기술경영 강화에 대한 요구로 이해된다. 이영선 포스코 이사회 의장도 “기술과 마케팅의 융합을 통해 철강 본원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신성장 고유기술 개발을 이끌 적임자”라고 말했다. 철강업계의 어려운 상황을 고부가가치 철강·소재 개발 등 기술혁신으로 돌파하라는 것이다.
포스코는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영업이익과 영업이익률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드는 등 창사 이래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가장 최근인 지난해 3분기 실적도 연결기준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38%나 감소했고 포스코 단독으로도 매출이 16.8%, 영업이익이 47.1%나 줄었다. 중국 철강업체의 추격과 세계적인 철강 공급 과잉 등으로 향후 전망도 밝지 않은 편이다.
권 사장은 강점인 기술 혁신 외에 다른 분야에서도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상황이다. 포스코는 최근 수년간 정준양 현 회장의 지휘 아래 에너지·자원 등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한 방편이었으나 성과는 좋지 않은 편이다. 따라서 이미 다각화한 사업을 재편하고 강력한 구조조정을 실시해야 하는 게 권 사장의 과제다.
정 회장과의 차별화를 어떻게 도모할지 주목된다. 권 사장은 정 회장의 고교·대학(서울대 사범대학 부설고교·서울대) 직속 후배다. 내부인사여서 조직에 칼을 들이대는 과감한 개혁이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부터 불거진 정 회장 거취 관련 외압 논란으로 어수선해진 조직을 안정시켜야 하는 것도 당면 과제다. 포스코 관계자는 “남의 말을 경청하고 온화하고 합리적 리더십을 갖고 있어 빠른 시일 내 조직을 추스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편 포스코 이사회가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로 CEO 후보를 선정한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사회는 애초 예상과 달리 지난 15일 CEO 후보추천위를 구성한 지 하루 만에 단독 후보를 결정했다. 외부의 영향력이 개입할 틈을 주지 않으려 했다는 해석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정치권의 매우 강력한 신호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업계에서는 포항·광양제철소장 등 요직을 거치지 않았고 경영·재무라인 근무 경험도 없는 그의 발탁이 의외라는 시각도 있다. 권 사장은 정동화 포스코건설 부회장과 막판까지 경합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