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맘마미아 열풍 식을 줄 모른다
입력 2014-01-17 02:31
‘맘마미아 마니아’.
1936년 미국에서 남북전쟁을 소재로 한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발표됐을 때 ‘타라 마니아’란 말이 생겼다. 타라는 불굴의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의 대농장을 의미한다. 따라서 ‘타라 마니아’란 ‘바람과…’의 열풍이 몰고 온 문화적 현상을 말한다.
팝그룹 아바의 히트곡을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 ‘맘마미아’가 마치 그러하다. 1999년 영국 런던에서 첫 무대가 올려진 후 스웨덴 스톡홀름 등 전 세계 400여개 도시에서 5400만 관객이 들었다. 스톡홀름은 ‘맘마미아’ 곡의 주인공인 아바의 고향이다. 세계 문화의 중심지 뉴욕 브로드웨이의 윈터가든 극장에선 12년 간 5000여회의 공연이 이뤄졌다.
첫 방한한 ‘맘마미아’ 오리지널 팀이 지금 한국에서 ‘맘마미아 마니아’를 낳고 있다. 지난해 11월 26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막이 오른 후 오는 3월 23일까지 계속되는 데도 연일 만석을 기록 중이다. ‘맘마미아’ 팬덤(특정 분야나 인물을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들은 중복 관람은 기본. 일반 관객은 너나없이 OST와 아바 음반 등 관련 용품을 산다. 또 2008년 제작된 영화 ‘맘마미아’를 찾는 이들도 늘고 있다. KBS 2TV는 이러한 현상을 반영해 모녀 간 토크쇼 ‘맘마미아’를 신설했다.
또 비교적 한가했던 극장 주변 한강진역은 ‘맘마미아’ 고객 특수를 누리고 있다. 주변 카페 및 음식점도 이들로 인해 매출이 늘었다.
‘맘마미아’는 2004년 한국 초연 후 1200회에 150만 관객이 든 기념비적 작품이다. 한국에서 뮤지컬이 연극에서 떨어져 나와 별도의 장르로 자리 잡게 된 것도 이 무렵부터다. 또 맘마미아가 당시 뮤지컬 산업을 자리잡게 하는데 큰 몫을 했다. 이같은 뮤지컬 붐은 대학에 뮤지컬학과가 생기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더불어 중·장년층을 극장으로 끌어낸 작품이 ‘맘마미아’다. ‘댄싱 퀸’ 등 아바의 곡을 흥얼거리며 청춘을 보냈던 그들은 작품 속 중년 여성 도나가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습에 매료됐던 것. 지중해 근처에서 작은 모텔 주인으로 살아가는 싱글맘 도나에게 결혼을 앞둔 딸 소피가 있고, 이 소피가 아버지일 법한 세 남성을 결혼식에 초대하는데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룬 작품이 ‘맘마미아’다. 세 명 중 누가 딸의 아버지인진 모른다. 그것에 상관 안겠다는 딸에게 “난 백 명의 남자와 잔 적 없어”라고 말하는 ‘막장 뮤지컬’인데도 즐겁고 유쾌하다. 지중해의 빛과 색, 노래와 춤이 가려주기 때문이다.
특히 커튼콜 ‘허니 허니’ ‘노잉 미 노잉 유’ 등의 아바 노래는 중·장년을 객석에서 일으켜 세워 춤추게 한다. 그래서 영국의 한 비평가는 “맘마미아는 프로잭(우울증 치료약)을 망하게 할 수 있다”고 썼던가.
지난 13일 밤 공연. 2시간30분의 ‘축제’가 끝나고 배우들이 아바의 하이라이트 곡을 부르자 관객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일어나 박수와 춤으로 화답했다.
관객 박수진(41)씨는 “미국 여행 중 윈터가든에서 봤을 때 자리에 앉아 흥겹게 박수치는 걸 본 적이 있다”며 “우리나라 사람들도 마당극 즐기듯 호응하면서 열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