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조용래] 불타는 산, 불붙는 짜증
입력 2013-11-14 18:07
가을도 끝자락이다. 만산홍엽(滿山紅葉)도 이제는 빛을 잃어가면서 하루가 다르게 채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변색한 잎사귀는 꺼칠한 늙은 손바닥처럼 작은 바람에도 사그락 쇳소리를 내고 떨어진다.
늦된 은행나무 몇 그루를 빼고는 은행잎은 나뭇가지에 붙은 것보다 길바닥에 깔린 게 더 많다. 사람들의 흙발에 짓이겨진 노란 이파리들은 흙먼지를 껴안고 또 다른 색깔변화를 꾀하며 부스러진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한두 번 더 내리면 오색 풍경은 음울한 모습으로 바뀔 것이다.
지난 토요일 지방에서 열린 한 연구회에 참석했다가 짬을 내 근처의 내장산을 둘러봤다. 전국적으로도 유명세를 타는 내장산 단풍이라지 않은가. 절정은 지났다지만 끝물이라도 맛볼까 싶었다. 추적추적 비가 뿌리는 바람에 기대는 쪼그라들고 있었는데 정읍에서 내장사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만난 풍경은 명불허전(名不虛傳)이 따로 없었다. 비가 오는 가운데서도 산은 단풍으로 불타고 있었다.
비구름이 낮게 깔린 데다 빗줄기가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계곡 깊숙한 곳까지는 한 눈에 잡히지 않았지만 만추의 정취를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올해도 계절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는 현장에 설 수 있음을 감사하면서 단풍예찬이 절로 터져 나왔다.
하지만 감사하는 마음은 주차장에서부터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체류 시간을 불문하고 입차 한 번에 중·소형차 5000원. 너무 비싸지 않느냐고 했더니 관리인조차도 그렇게 느낄 수 있겠다고 동의를 한다. 평소엔 4000원인데 5∼11월 성수기에는 25% 인상한 금액을 받는다고 했다.
그날 차를 세워놓았던 시간이 겨우 1시간 정도였음을 감안하면 국립공원관리공단이 폭리를 취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2007년부터 국립공원 입장료를 없앴노라고 생색을 내놓고는 뒤에서는 고액의 주차요금을 뜯어내는 모습이 공단의 이중성을 보는 듯해 영 마뜩잖았다.
여기에 내장사 입장료는 물론 별도다. 절 구경을 하지 않아도 관계없다. 그런데 그곳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또 한 번 강적과 맞부딪쳤다. 가판대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다. 그악스럽게 터져 나오는 강한 비트음의 노랫소리는 괴성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호객을 꼭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인지.
조금 전까지의 우아한 풍광은 폭리와 괴성 탓에 묻히고 말았다. 단풍산은 불타고 있었지만 짜증으로 불붙는 마음은 쉬 안정을 찾지 못했다. 집 나서면 개고생이라더니….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