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권력지형 변화-G2의 동북아 패권] 미·중 ‘파워게임’ 군사·안보·경제서 전방위 충돌

입력 2011-12-30 18:01

안보

올해, 미국과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패권(覇權)을 다툰다. 아시아는 이제 군사·안보적 측면에서 양국의 ‘핵심 이익’ 지역이 됐다. 아시아 중시 정책으로 개입의 정도를 높이고 있는 미국, 군사·안보를 넘어 경제에까지 아시아의 맹주를 자처하는 중국. 2012년 동아시아에서 두 강대국 간 갈등과 충돌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게다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런 사망은 동북아에서의 불확실성을 한껏 증폭시켰다. 북한 새 지도부의 정책 방향에 따라 동북아는 조만간 미·중이 가장 날카롭게 부딪히는 가장 민감한 지역이 될 수도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태평양은 어느 누구도 넘보지 못하던 미국의 영역이었다. 미 7함대의 아성을 넘어 중국 해군은 동아시아로 태평양으로 거침없이 동진(東進)하고 있다. 지난해 핵 항공모함을 발진시켰고, 미 7함대 함정들을 타격할 수 있는 지대함 미사일을 배치했다.

후진타오 주석은 지난 12월 6일 베이징에서 열린 해군 제11차 당대표대회 및 전군 장비 공작회의 대표들을 접견한 자리에서 “국가안전에 더 많이 공헌하기 위해 해군이 군 전투준비를 강화하고 변화와 현대화 작업을 견고하게 추진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중국해 영유권은 물론 태평양을 염두에 둔 것으로 미국을 겨냥한 발언이다.

이 발언은 ‘미국의 아·태지역 지도자 역할’을 선언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선언이 나온 지 한 달도 못돼 나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11월 하와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와 발리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정상회의에서 아시아 개입을 강조하면서, 잇따라 사상 첫 미군의 호주 장기 주둔, 인도네시아에 F-16 전투기 판매 등을 결정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지난달에 인도·일본과 함께 처음으로 해상안전강화 대화도 가졌고,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을 미얀마에 보내 관계개선을 추진했다. 태평양으로 진출하려는 중국을 군사·안보적으로 둘러싸는 형국이다. 그러자 원자바오 총리는 EAS 정상회담에서 남중국해를 포함한 지역분쟁에 대한 ‘외세개입’을 경고했다.

올해 양국 해군력은 영유권 주장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남중국해와 한반도, 그리고 대만 주변 해역에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남중국해 영유권 논란은 이미 양국이 입장을 분명히 밝힌 터라 점차 갈등이 고조될 경우 실제적인 액션플랜이 가동될 수도 있다. 중국이 더 나가면 미국은 우세한 해·공군력을 전진 배치할 것이 분명하다. 미·중이 현재 한반도에 대해 안정적 관리 정책을 쓰고 있다.

하지만 김정은 체제의 북한이 위기감을 고조시킬 경우 서해는 언제든지 양국 해군력이 대립할 수 있는 민감한 해역이다. 1월 14일 실시될 대만 총선 결과도 주목된다. 대만 독립을 강조하는 민주진보당 차이잉원 주석이 당선되면 대만 해역에 위기감이 돌 것이다. 미국이 핵심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이를 용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워싱턴=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

경제

“불균형 속의 경기 회복이 균형된 경기침체보다 낫다.” 지난해 11월 21일부터 이틀 동안 중국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에서 개최된 제22차 미중무역공동위원회에서 중국측 수석대표 왕치산(王岐山) 부총리가 한 말이다.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 갈등에서 제기되고 있는 불균형 문제보다는 중국 경제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미국으로선 올해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높은 실업률 등 어두운 경제 상황을 그대로 둘 순 없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중국에 대해 위안화 평가절상, 시장 개방 확대 등 더욱 압박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정부는 일부 품목의 경우 중국 시장이 제대로 개방되지 않아 미국 상품이 들어가기가 힘든 형편이라고 불만이다. 미국 정부는 또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국이면서도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WTO 규정을 어기고 있으며 지식재산권 절취도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상대국에 대해 갖고 있는 입장은 이처럼 확연히 대비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중국의 경우 지난해 주요 교역 상대국인 유럽연합(EU)과 미국에 대한 수출이 전체 수출증가율에 미치지 못했다. 중국이 동아시아 시장을 중시하는 건 당연한 결과다.

중국은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과 FTA, 대만과는 ECFA(양안경제협력기본협정)를 각각 체결했다. 여기에다 한·중 FTA와 한·중·일 FTA도 추진 중이다. 대만 아세안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경제권을 묶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미국대로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구가하고 있는 동아시아가 당면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라고 인식하고 있다. 미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강하게 밀어 붙이면서 일본도 끌어들이려고 하는 시도는 중국이 동아시아 경제주도권을 쥐는 것을 그냥 보고 있지 않겠다는 뜻이다.

문제는 중국이 1조 달러가 넘는 거액의 미국 국채를 보유하고 있는데다 제조업 분야에서 미국이 따라올 수 없는 위치에 가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중국은 수출의존도를 줄이고 내수 확대를 꾀함으로써 성장을 추구할 수 있는 경제 구조를 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는 상호의존적인 구조를 무너뜨리면 세계 경제가 파탄난다는 공통 인식을 갖고 있다. 양국이 동아시아 경제권이나 환율 문제를 놓고 극단적으로 대립할 것처럼 떠들지만 이면에서는 협력 기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소위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 핵무기 상호 보유가 전쟁 억지력으로 작용하는 상태)이라는 개념이 미·중 간 경제 분야 갈등에 있어서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고 진단한다. 왕궈강(王國剛) 중국 사회과학원 금융연구소 소장은 이에 대해 “과거 경험을 보면 미국은 대선 전에는 중국에 대해 심한 표현을 썼지만 선거 뒤에는 그러지 않았다”고 말했다.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