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의 해-대통령과 대선의 함수] 박근혜에게 MB는 거침돌… 적정거리 유지가 전략
입력 2011-12-30 18:30
이 대통령과 여당 대권 주자의 관계
역대 대통령의 대선 영향력은 민주화 진전과 함께 축소돼 왔다. 후계자를 ‘지명’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과 달리 노태우 전 대통령은 김영삼 후보의 대중적 지지도에 계속 끌려 다녔고 여론조사와 경선제도 등이 정착되며 이후 대통령들의 입김도 제한적이었다. 임기말 극심한 레임덕에 대통령들이 예외 없이 여당을 탈당해야 했던 사정도 작용했다.
그러나 ‘현직 대통령이 특정 대선후보를 당선시킬 순 없어도 낙선시킬 순 있다’는 대통령과 대선후보들의 함수관계는 거의 정설로 자리 잡았다. 여기엔 김영삼,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몫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표면적 중립을 지켰지만 총애했던 이인제 후보의 탈당을 강하게 만류하지 않았고 이는 여권 표를 분산시켜 이회창 후보의 낙선을 가져왔다.
노 전 대통령은 훨씬 적극적으로 개입했고 무기는 ‘말’이었다. 고건 전 총리에게는 “실패한 인사였다”고 했고 정운찬 전 총리와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를 겨냥해선 “이 눈치, 저 눈치 살피다가 될 성 싶으면 나서는 자세로는 결코 될 수 없다” “보따리장수 같이 정치해서야 나라가 제대로 되겠나”라고 말해 타격을 줬다.
지난달 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디도스 공격 사건이 터지자 한나라당 친박근혜계에선 “청와대가 경찰도 컨트롤 못하는 건지, 우리를 물 먹이려는 건지 모르겠다”는 불만이 나왔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대선 행보에 큰 영향을 주는 상황이 벌어지자 ‘현직 대통령’을 의심스런 눈초리로 바라본 것이다. 박 비대위원장도 ‘대통령의 영향력’을 의식해 지난 4년간 이명박 대통령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 애썼다. 그가 반기를 들었던 건 주로 세종시, 동남권 신공항 등 정책 사안이다.
대통령과 대선주자의 함수관계를 충분히 학습한 박 비대위원장이기에 이 대통령이 한나라당을 탈당하게 될 가능성은 크게 줄었다. 여권 관계자는 “박 비대위원장은 과거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며 대통령에 대한 배신을 여러 번 목격했다. 웬만한 상황이 아니면 그가 이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할 일은 아마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이 당적을 계속 유지해도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대선에 적극 개입하리라 보는 이는 거의 없다. 이 대통령은 재임 내내 ‘정치’가 아닌 ‘일’을 해왔고 현재 지지도, 격변하는 한반도 정세, 어려운 세계경제 상황 등을 볼 때 스타일을 바꿀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임기 5년 차에도 ‘일하는 정부’ 스탠스는 계속되고 이 대통령은 정치인보다 국가 지도자 역할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른 고위 관계자는 지난달 “MB맨들이 내년 총선에서 여당 초강세 지역에 출마하는 건 안 된다”며 ‘자기희생’을 주문했다. 박 비대위원장이 공천권을 행사할 상황에서 청와대가 MB맨 ‘총선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건 ‘박근혜 대선행보’에 걸림돌이 되지 않겠다는 우호적 메시지다. 이 대통령은 김정일 사망 이후 여야 대표 회담 때 박 비대위원장과 독대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퇴임 후 독자적 정치세력을 유지하는 데 큰 관심이 없다고 한다. 지난해 가을 발간된 영문 자서전을 통해 퇴임 후엔 세계를 다니며 봉사와 교육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총선과 대선의 정치 격랑 속에서 이 대통령은 박 비대위원장 측과 계속 우호적 관계가 유지되도록 ‘관리’하며 정치 전면에선 한 걸음 떨어진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