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염치 있다면 준법지원인제 포기해야
입력 2011-12-29 22:07
법무부가 내년 4월 시행되는 준법지원인 제도의 적용대상을 자산규모 3000억원 이상의 상장사로 정했다. 이 같은 내용은 최근 입법예고한 상법 시행령 개정안에 담겼다. 그동안 경제계가 2조원 이상, 학계가 5000억원 이상, 법조계가 1000억원 이상을 주장한 점을 감안해 절충점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이 기준대로라면 거래소 상장사의 절반에 해당하는 334개 기업이 준법지원인을 고용해야 한다.
이 제도는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할 당시부터 말이 많았다. 기업 대주주와 경영진의 전횡을 막고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자는 취지야 그럴싸하지만 문제는 변호사와 대학교수 등 법조경력자를 강제한다는 것이었다. 법조인의 일자리를 챙겨주려는 목적이 노골적이라는 것이다. 최근 경찰청에 경감 계급으로 로스쿨 졸업생 특채를 요구했다가 거부당한 것도 지나친 직역이기주의의 결과다.
시행령에 대한 재계의 반발은 이해할 만하다. 윤리경영을 돕는다는 미명 아래 기업의 자율성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윤리경영은 기업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달성하는 것이지 정부가 변호사 고용으로 해결할 사항은 아니다. 더욱이 기업들이 감사위원회, 상근감사, 내부회계관리제 등의 장치를 두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운영의 문제이지 제도의 흠결이 아닌 것이다. 준법감시인을 두고도 대형비리를 막지 못한 저축은행 사태가 그렇다.
내년 경제가 올해보다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연봉 준법지원인 채용을 강제할 경우 대기업보다 중견기업의 부담이 크다. 대기업이야 이미 고용 중인 변호사의 직함만 바꾸면 되지만 중견기업은 새로 임원급 법조인을 고용해야 한다. 이는 청년실업의 심각성을 외면하는 처사이기도 하다.
정부는 입법예고 기간 중 경제계의 의견을 들어 준법지원인 적용범위를 조정하기 바란다. 재계의 목소리를 새로운 제도에 대한 거부나, 엄살로만 볼 것이 아니라 공명한 고용질서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준법지원인제도 자체에 대한 국민의 시선은 여전히 따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