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상온] 첩첩산중 한국 외교, 국가 역량 집중해야

입력 2011-12-29 18:37


한국 외교가 시련을 맞고 있다. 풀기 어려운 난제(難題)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우선 김정일 사망에 따른 한반도 정세 ‘새 판짜기’에서 주도권 행사하기가 있다. 한반도 문제의 제1 당사자이면서도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였던 전철을 이제는 밟지 않도록 한국 외교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다.

그러나 한국이 ‘포스트 김정일’ 상황에서 외교적 이니셔티브를 쥔다는 게 어려울 건 뻔하다. 북한이 기본적으로 미국만 상대하려 하는데다 중국은 6자회담 의장국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북한의 빅 브라더 행세를 톡톡히 하면서 북한에 대한 관련국들의 ‘전략적 관여’를 견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은 김정일 사망 발표가 나오자마자 한·미·일·러 4개국 주중 대사를 불러 북한을 자극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북한문제의 주도권이 중국에 있음을 과시한 셈.

산적한 難題 어떻게 푸나

김정일 사망과 관련해 한국 외교가 직면한 또 다른 도전은 이른바 균형외교다. 김정일 사후 북한이 대외 도발을 할 경우 대응책을 놓고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거나 갈등을 겪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꼭 그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미·중 G2 구도에서 양국간 대립이 심화될 소지는 작지 않다.

이때 한국이 양대 강국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문제가 대두될 수 있다. 한·미동맹은 물론 여전히 한국에 사활적이지만 경제·안보적 측면에서 대중관계 역시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미·중 간 균형 잡힌 외교를 펼쳐나가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일부에서는 ‘연미화중(聯美和中)’의 외교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어떻게 이를 추진할 것인가다. ‘화중’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한국과는 전략적 협력동반자라면서도 정치적으로 북한 편만 들어왔다. 또 김정일 사후 한국의 정상 간 전화통화 요구를 일축하는 등 고자세 일변도의 대한(對韓) 행태를 보여왔다. 특히 김정일 사망으로 일단 잠복했지만 중국 불법조업 어선의 ‘해적질’과 한국 해경 살해사건은 언제든지 거세게 타오를 수 있는 외교적 불씨다.

하긴 중국만이 문제는 아니다. 역시 김정일 사망에 덮였지만 일본·미국과도 외교적 난제가 놓여있다. 지난 18일 열린 한·일정상회담에서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위안부 평화비를 철거해달라고 주문했다. 이 대통령이 위안부 문제를 꺼낸데 대한 답이었다.

또 정상회담 전날에는 겐바 고이치로 외무상이 “독도는 일본 고유영토”라고 주장했다. 일본의 과거사 반성 결여와 독도 영유권 주장은 해묵은 것이긴 하지만 또 다시 쟁점화 된 것.

그런가 하면 한국 외교가 ‘찰떡궁합’을 자랑해온 미국과도 문제가 생겼다. 핵무기 개발의혹을 받고 있는 이란 제재를 둘러싸고서다. 지난 15일 미국 의회를 통과한 이란 금융제재법에 따르면 한국은 법이 발효되는 내년 7월부터 이란산 원유를 도입할 수 없게 된다.

범정부적 뒷받침 필수적

이 경우 한국이 받을 경제적 타격은 작지 않다. 결국 대이란 제재에 동참하되 미국으로부터 법 예외조항을 적용받아 이란산 원유 수입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한다는 게 한국 대미외교의 최우선과제로 떠올랐다.

이렇게 산적한 외교적 난제들을 풀어나가려면 당연히 외교통상부의 비상한 노력이 요구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범정부적, 국가적 역량이 집중돼야 하고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일례로 대미 편중 외교와 대중 저자세 외교에서 탈피해 당당하게 ‘연미화중’ 외교를 펼치려면 청와대부터 그에 걸맞은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게 한국 외교가 시련을 극복하는 길이다.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