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 수위 넘은 학교폭력] 폭력 호소하자 교장이 되레 “가정교육 잘못시켰다”

입력 2011-12-27 20:01


은폐 급급한 학교… 禍 키운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1명 이상이 학교폭력을 경험했다. 전국 초·중·고교생을 570만명으로 보더라도 60만명 가까운 학생이 학교폭력을 경험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해 전국 초·중·고교에서 자체 심의한 학교폭력이 7823건이라고 밝혔다. 교내 신고센터에 접수되거나 학교폭력자치위원회 등에서 심의한 사건을 집계한 수치다. 이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학교폭력은 영원히 반복될 수밖에 없다.

◇학교와 교육당국의 무사안일주의=국가인권위원회가 27일 펴낸 학교폭력 관련 상담사례에는 학교가 폭력을 알고도 방치하거나 사태해결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내용이 주로 담겨있다. 피해학생이나 학부모가 폭력이 있었던 사실을 학교에 알리더라도 사안을 덮는 데 급급했다는 것이다.

상담사례에 따르면 초등학교 3학년 딸을 둔 A씨는 2009년 어느 날 딸의 몸에서 멍과 상처를 발견했다. A씨는 딸이 2년간 상급생으로부터 거의 매일 폭행을 당했다는 말을 듣고 학교 측에 알렸다. 그러나 학교 측은 “증거가 없다”고 무시했다. A씨는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중재로 가해 학생 측과 합의했지만 딸은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B씨는 자녀가 학교폭력 피해를 보자 담임교사에게 이의를 제기했으나 학교 측은 합의를 종용했다. B씨가 인권위에 진정하자 학교는 그제야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대책을 내놓았다. 심지어 피해 학생 부모가 학교장으로부터 “가정교육을 잘못 시켰다” 등 인격침해성 발언을 들었다며 상담을 요청한 사례도 있었다.

◇되풀이되는 정부대책, 실효성은 없다=교과부는 지난 26일 시·도 부교육감 회의를 열고 학교폭력근절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근절방안은 재탕, 삼탕에 불과했다. 매년 2차례 학교폭력 실태를 조사하고 전문상담사 1800명을 학교에 배치한다는 대책은 지난해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 5개년 기본계획에 담겨 있었다. 당시 교과부는 법무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등 8개 정부부처 합동으로 2014년까지 6개 정책과제, 78개 세부사업을 시행해 학교폭력을 사전 차단하겠다고 했다. 배움터지킴이, 등하교안심알리미 서비스, 학교폭력 긴급전화, 전문상담순회교사, 학교폭력 SOS지원단 등 내놓을 수 있는 모든 대책이 망라됐다. 하지만 폭력에 희생되는 학생에게 달라진 건 없었다.

◇학교에서의 신뢰가 먼저 이뤄져야=전국 대부분 학교에는 폭력 신고센터가 있지만 신고는 거의 없다. 학생 사이에는 “말해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불신이 팽배하다. 학교가 먼저 나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피해학생이 보복 등을 두려워해 부모와 교사에게 알리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어려서부터 적극적으로 학교폭력에 대처하는 방법을 교육하고, 사소하고 작은 사건이라도 반드시 해결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이유다.

한 전문가는 “학생 개개인이 잘못을 스스로 해결할 강한 의지를 갖도록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도 “폭력과 따돌림이 잘못된 것이고,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믿음을 갖도록 학교와 교육당국이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승욱 기자 swk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