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르타호, 12월 28일 오전 ‘출항 뱃고동’ 다시 울린다
입력 2011-12-27 22:15
아름답다는 탄성이 저절로 나오는 얼음바다 풍경. 하지만 그 위에서 벌어지는 생존을 위한 사투는 처절하다. 스파르타호를 구조하는 작업은 27일에도 계속됐다.
◇얼었던 마음이 녹다=아라온호와 만난 25일 이후 스파르타호 선원들의 표정은 롤러코스터였다. 아라온호가 나타났을 때 두 손 흔들어 반겼지만, 배 상태가 심각하다는 점검 결과를 받아들고 다시 어두워졌다.
하지만 아라온호 승조원들이 용접기 등 장비를 가져와 이틀에 걸친 철야작업을 해가며 1m 정도 찢어진 틈새를 말끔하게 붙이는 등 가시적 성과를 보이자 표정이 밝아졌다. 처음엔 그저 보수작업을 쳐다만 봤지만 어느새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김현율 선장은 “선원들 얼굴에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스파르타호 선장이 처음에는 침울한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하더니 밤샘 작업을 지켜보고 나서는 우리 기관사를 얼싸 안고 기뻐했다”고 전했다.
26일 배 밖으로 모습을 보이지 않던 인도네시아 선원들도 이날은 하나둘씩 갑판에 올라 여유를 즐겼다.
용접을 통한 1차 봉합작업은 오전 8시에 끝났다. 이후 판을 덧댄 뒤 거푸집을 만들었고 오후 8시부터 시멘트로 보강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시멘트가 빨리 굳을 수 있도록 아라온호의 대형 전기난로를 가져다놓기도 했다. 아라온호에 임시로 저장했던 기름을 스파르타호로 옮기는 작업도 동시에 진행됐다.
28일 오전 8시쯤(현지 시간) 시멘트가 굳은 정도를 확인한 뒤 상태가 좋으면 출항할 예정이다. 스파르타호와 함께 조업하던 자매어선 ‘치요-마루3’호가 대기하고 있는 북쪽 160㎞ 해역으로 스파르타호를 인계하면 구조작업은 최종적으로 완료된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릴 경우 28일 오후 8시쯤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후 스파르타호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리틀턴항으로 돌아가 조선소에서 정식 수리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김 선장은 “스파르타호가 상시 저기압 구간으로 강한 서풍이 부는 남위 60도의 바다를 잘 건널까 걱정이다. 그곳만 잘 통과하면 뉴질랜드까지 갈 수 있을 텐데 스파르타호가 날씨 상태를 잘 살펴 파도가 잔잔한 날 항해해서 안전하게 도착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기다림과 초조함 속에 진행되는 준비작업들=아라온호 승조원들 중심으로 구조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아라온호에 승선한 극지연구소 과학자들과 현대건설 관계자 등은 차분한 가운데 본격적인 연구·탐사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26일 안전교육을 마쳤고, 남극대륙에서 필요한 생존용 키트와 각종 연구장비들을 꼼꼼하게 챙겼다. 지질물리학실 등 아라온호에 마련된 연구실에서 앞으로 할 계획을 점검하고 논의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남극은 여름에만 접근이 가능한 지형적 특성이 있다. 때문에 일부에선 늦어진 일정 때문에 연구 및 탐사 활동에 차질을 빚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했다. 이들은 스파르타호 수리가 언제 끝날지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기지건설 예정지에 도착한 뒤 연구를 짜임새 있게 진행할 수 있도록 일정을 재조정하는 모습이었다.
한편에선 여유도 느껴진다. 아라온호의 도서실 책장에 뭉텅뭉텅 빈자리가 보인다. 일부 승무원들이 만화책과 소설책으로 무료함을 달래고 있기 때문이다. 10권짜리 삼국지와 허영만의 만화 등은 여전히 제자리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
◇터졌다 안 터졌다 속 터지는 통신환경=아라온호는 배 전체에서 인터넷을 쓸 수 있는 장비를 갖추고 있다. 현재 위치인 남위 74도에서도 느리지만 인터넷이 된다.
문제는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다는 점이다. 날씨에 영향을 받지만 배가 어느 방향을 보고 있느냐도 변수다. 아라온호는 스파르타호 구조를 위해 사고현장에 정박한 첫 날인 25일은 인터넷이 연결됐지만 26일에는 거의 하루 종일 불통이었다. 이 때문에 기사 전송에 4시간이나 걸려 애를 먹었다. 이는 아라온호가 해류와 바람 때문에 스파르타호와 충돌할 가능성이 생기자 배의 방향을 조금씩 조정했기 때문이다. 두 척의 배는 24시간 동안 약 120도 정도 방향을 틀었다. 27일에는 다시 인터넷이 잘돼 기사 송고를 제 시간에 마칠 수 있었다.
내 손 안의 컴퓨터를 가지고 초고속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문명사회의 습관을 유지하기엔 남극은 너무나 먼 곳에 있다.
아라온호(남극해)=김도훈 기자 kinch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