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형의 교회이야기] 폴 스티븐스식 목회

입력 2011-12-27 18:19


내가 처음으로 폴 스티븐스 교수를 알게 된 것은 1990년대 초반 그가 쓴 ‘참으로 해방된 평신도’를 읽고 나서부터였다. 현재 충주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친구 진장원 교수가 반드시 읽으라면서 그 책을 소개해줬다. 강렬한 책이었다. 읽고 나서 무심코 썼던 평신도라는 말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

스티븐스 교수를 직접 만난 것은 1995년경이었다. 당시 캐나다 리젠트대학교에서 실천신학을 가르치던 스티븐스 교수는 출판사인 미션월드 초청으로 첫 방한을 했다. 마음먹고 그를 인터뷰했다. 그는 지난 언론 생활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인터뷰 대상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성경에는 ‘평신도’라는 단어는 없다고 말했다. 흔히 평신도로 번역하고 있는 희랍어 ‘라오스(laos)’는 ‘모든 하나님의 성도’라고 강조했다. 스티븐스 교수에 따르면 교회 내에는 평신도와 성직자를 계층적으로 구분 짓는 경계가 있다. 그는 그 경계가 ‘머리카락만큼 가늘어 보이지만 다이아몬드만큼이나 단단한 선’으로 이뤄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회 내에는 목회자와 평신도라는 계층이 다른 두 그룹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 기능이 다른 ‘두 그룹의 성도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때 이후로 나는 평신도와 일터사역 등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최근 ‘일 삶 구원’(IVP) 출간을 기념해 방한한 스티븐스 교수를 서울 서교동 IVP 본부 강연회장에서 만났다. 16년 만의 재회였다. 세월은 그의 주름을 깊게 만들었지만 정신은 변함이 없었다. 그는 청중들에게 ‘일상의 영성’에 대해서 강연했다. 스티븐스 교수는 평신도 신학뿐 아니라 일과 생활 영성, 리더십 등의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는 목사와 교수를 하면서도 직접 목수로 일하기도 했다. 철강회사를 경영하던 아버지 밑에서 잡역부와 회계, 사무직 등을 경험했다. 그 같은 경험이 그를 교회 안의 목회자가 아니라 ‘생활 신학’으로 무장된 ‘세상 속의 목회자’가 되게 했다. 그의 변함없는 질문이 있다. “당신의 교회는 교회라는 하나의 조직을 위해서 존재하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가?”

그는 청중들에게 “모든 사람들에게는 일이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자 한 사람이 일어나서 “나에게는 지금 일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스티븐스 교수는 빙그레 웃으며 “당신은 지금 전심으로 일을 찾고 있는 풀타임(full-time) 일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대꾸했다. 그는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며 크리스천들은 복음으로 세상을 만드는 ‘월드 메이커(World Maker)’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월드 메이커는 교회 내에서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 만들어진다면서 진정한 월드 메이커야 말로 세상을 바꾸는 ‘월드 체인저(World Changer)’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를 만나면서 지금 한국교회에는 세상 속에서 어엿한 일을 갖고 목회를 하는 ‘스티븐스식 목회’가 절실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태형 종교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