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손수호]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라”

입력 2011-12-26 18:10


국상을 당했다. 아프리카의 작은 토후국이 아니라 세계 안보질서를 뒤흔든 북한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망설였다. 유엔총회는 1분간의 묵념 시간에 서방국가 대표들이 퇴장했다. 유엔 안보리 제재를 받는 국가라는 이유였다. 중국은 수뇌부 전원이 분향한 뒤 어깨 역할을 자임하고 있으며 미국도 동북아의 외교환경 변화에 관심을 보일 뿐이다. 한국 정부는 천안함·연평도의 출구전략으로 활용하고픈 눈치다. 죽음은 그렇게 객관화되는 것이다.

김정일 장례식이 열리는 내일이면 평양이 눈물바다에 잠길 것이다. 공화국 인민들은 37년간 군림하던 혹은 보살피던 최고 지도자를 최고의 슬픔으로 보낼 것이다. 그들이 지금까지 보여준 눈물은 놀라웠다. 인민들은 대성통곡했다. 엄동설한에 김일성광장을 채운 인파가 다 그랬다. 눈물은 인간의 감정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생성되는 데, 카메라가 돌아간다 쳐도 동작의 과장은 몰라도 없는 눈물을 짜낼 수는 없다. 대형마트 에스컬레이터에 주저앉아 운 것은 고인이 마지막으로 시찰했던 곳이어서 그랬다고 한다.

엄동설한에 쏟아내는 대성통곡

남측 사람들은 그들을 위로하기보다 안쓰럽게 본다. 유치원생이 단체로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대목에서는 목이 멘다. 저 어린 것들이 뭘 안다고. 그래도 애달파 하지는 말자. 눈물에는 논리가 있을 수 없으니 그저 물방울의 순수성을 믿을 수밖에. 세습왕조가 된 지 오래이고 보면 왕국 신민의 행동으로 이해하면 쉽다. 고종이 승하했을 때 온 백성이 연도에 나와 부복(俯伏)한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게 눈물로 날을 지새는 동안 젊은 지도자가 선명히 모습을 드러냈다. 상주(喪主)이면서도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당과 군 수뇌부를 이끌고 등장하는 장면을 보면 애도기간이 권력투쟁기간이었던 셈이다. 새 지도자에게 북한 언론은 “백두산이 낳은 또 한분의 천출위인” “우리에게는 또 한분의 태양”이라는 찬사를 바치고 있다.

남쪽 사람들은 한숨을 내쉰다. 28세면 너무 젊지 않나. 회사로 치면 겨우 신입사원인데…. 그렇지 않다. 우리 기업에도 젊은 2세 경영인이 얼마나 많은데. 오너십을 인정하면 리더십이 생기는 법이다. 더욱이 2009년에 후계자에 내정된 뒤 아버지 김정일의 지도 아래 강도 높은 국가경영수업을 받았다고 하지 않나. 하늘의 태양은 하나지만 오늘의 태양은 어제와 다른 것이니 새로운 태양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겠다.

이런 시각으로 바라보면 북쪽 인민들의 저 지독한 슬픔이나 전대미문의 3대 세습을 걱정할 일이 아니다. 역사발전이 북녘에만 멈춘 것 같아 안타깝지만 어쩔 것인가, 이 또한 그들의 선택이자 운명임을. 그러나 동포로서의 감정을 죽이고 차가운 외국인의 이성으로 접근하더라도 북한 새 지도부에게 바라고 싶은 것이 두 가지 있다.

새 지도부, 쌀밥으로 보상해야

먼저 인민들에게 밥을 먹여야 한다. 권력에 가까운 평양특별시민들이야 지도자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겠지만 변경의 주민들은 배가 고파서 운다. 이들에게 쌀밥을 먹여 흘러내리는 눈물을 멈추게 해야 한다. 세 끼 밥을 먹이는 방법은 지도자들이 더 잘 알 터이니 구태여 답을 내놓진 않겠다.

다음으로 최소한의 상식이 통하는 국가가 되기를 바란다. 선린외교를 지향하고 국제평화를 존중하는 나라, 자국민에게 표현의 자유 등 천부인권을 보장하는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문명국의 꼴을 갖추어놓고 우리와는 다정한 이웃 혹은 형제국으로 지냈으면 좋겠다. 형제가 한 집에 살지, 이웃으로 남을지는 다음의 일이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