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방 꺼진 사무실서 밤샘근무… 관가에 ‘김정일 한파’
입력 2011-12-22 18:31
“국가 비상시에 밤샘하는 것쯤은 당연하지만 너무 추워서….”
지난 19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사실이 발표된 날을 포함해 나흘째인 22일 금융시장은 이미 안정을 되찾았다. 사재기 등의 위기 현상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유독 지금까지도 김 위원장 사망에 따른 한파가 몰아치는 곳이 있다. 정부 중앙청사·과천청사를 중심으로 한 관가와 그 주변 일대다.
기획재정부 직원들은 20일까지 이틀간 200여명이 밤샘 근무를 했다. 김 위원장 사망으로 전 정부부처에 내려진 비상근무 명령 때문이다. 재정부는 금융시장과 대외경제 상황 등 점검 때문에 더 많은 인력이 비상 업무에 투입됐다. 고용노동부나 환경부 등 대북상황이나 경제상황 점검과 관련 없는 부처들도 예외 없이 과별 1인 이상 밤샘 근무를 했다. 21일부터는 비상근무령이 완화됐지만 여전히 국·실별 최소 1명이 밤샘 근무를 해야 한다.
밤샘 근무 자체도 힘들지만 더 큰 어려움은 청사 건물 밖에서 몰아치는 한파다. 체감온도가 영하 10도를 밑도는 날씨에 오리털 잠바, 라꾸라꾸 침대(간이 접이식 침대)와 담요 등을 동원하지만 추위를 이겨내기엔 역부족이다. 정부의 동절기 전력 절감 조치에 따라 저녁 6시 이후 난방이 끊기기 때문이다. 과천 정부청사에 근무하는 한 과장은 “직원들 대부분 국가 비상상황에 밤샘 근무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고 받아들인다”면서도 “하지만 너무 추워서 덜덜 떨다 몸살감기로 고생하는 동료직원들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24시간 국내외 금융시장 동향을 모니터링하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도 공공기관 건물로 심야시간대 중앙난방이 공급되지 않는다. 금감원 관계자는 “원칙적으론 개별 전열기를 사용하면 안 되지만 영하의 날씨에 사무실을 지키는 게 고역이라 편법으로 개인별 전기난로를 사용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청사 바깥 풍경은 더욱 썰렁하다. 예년 같으면 각종 송년회 등 행사로 북적거릴 청사 주변의 식당들은 ‘대목’이 평소보다도 못하다며 울상이다. 각 부처들이 잇따라 송년회를 취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정부 고용부 농림수산식품부는 각각 20일, 19일, 27일 저녁에 잡았던 공식 송년회를 연말 마지막 주 점심식사로 대체했다. 통상교섭본부 지식경제부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공식 송년회도 모두 새해 신년회로 대체됐다. 이에 따라 청사 구내식당과 분식집 등이 반사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정부과천청사역 근처 한 분식집 종업원은 “최근 갑자기 저녁시간 때 김밥 배달 주문이 폭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부처 한 국장은 “솔직히 우리 부는 이번 상황과 거의 연관도 없는데 연말에 직원들 독려하는 식사자리 정도는 해도 되는 것 아닌가 싶었다”면서 “그렇지만 괜히 긁어 부스럼 내지 말자는 생각에 일단 취소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광주지방국세청장, 고용부 광주지청장, 국가정보원 간부 등 전남·북 기관장 10여명이 20일 저녁 전북의 한 식당에서 회식자리를 가졌다가 국무총리실 공직복무관실 감찰반에 적발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재정부 고위관계자는 “현 상황은 일단 안정돼 보이지만 김 위원장 애도기간(29일까지) 전후로 돌발 변수나 특이사항이 생길 수 있어 비상인력 대기는 불가피하다”면서 “다만 밤샘 근무 시 추위를 피할 수 있는 방안 등 근무 여건은 검토해볼 방침”이라고 말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