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철휘 (18) 불의의 지뢰 폭발… 부상자 후송하며 간절한 기도

입력 2011-12-20 21:28


나는 소령 시절 육군본부 인사운영감실에 근무하면서 육군대학 정규과정을 들어가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그때는 육군대학 선발방법으로 필기시험과 평정, 교육 성적 등을 포함한 자력심사를 병행했는데 인사운영감실에는 육군대학을 일등으로 졸업한 사람을 비롯해 우수한 선배들이 많아서 공부를 하다 모르는 것을 언제든지 물어볼 수 있었다. 또 교범에 씌어 있지 않은 것에 대해서 시원한 설명도 들을 수 있어서 시험공부를 하는데 과외 선생님을 모시고 있는 셈이었다.

지금도 육군대학이 중요한 과정이지만 그 당시에는 육군대학 정규과정에 들어가는 것이 커다란 꿈이었다. 왜냐하면 육군대학 정규과정을 나오면 대령까지는 보장이 된다고 할 정도로 중요한 엘리트 과정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육군대학 교육을 마친 후 새로운 보직을 받아 옮겨가야 하는데 나는 어느 자리로 가야 좋을지 좀처럼 감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 곳이나 가라는 대로 가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옆에서 “교관을 한번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 육군대학 교관이 되는 것은 권위도 있고 경력에도 아주 좋은 요직이었다. 과거에 보병학교와 제3하사관학교에서 교관을 하려다가 못했던 아쉬운 기억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하늘이 무너져도 육군대학에서 교관을 한번 해봐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그런데 이마저도 여러 상황이 여의치 않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교사 자격증을 두 개나 가지고서도 끝내 군 교육기관에서 선생(교관) 노릇은 한번도 하지 못했다.

다시 야전부대인 30사단으로 가게 됐다. 그곳에서 연대 인사과장을 하면서 중령으로 진급도 했고 필수직위인 대대장도 마쳤으며 다시 전방으로 부대를 옮겨 3사단 인사참모로 근무했다. 그렇게 야전근무를 마친 후 정책부서인 국방부 인사국으로 가서 인사과의 제도 담당을 맡게 되었다. 그 직책은 인사에 관련된 정책적 제도를 연구하는 것인데 장교들의 추서진급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추가 임무도 맡게 됐다.

“인사장교님, 큰일 났습니다! 전방에 지뢰사고가 났는데 중대장님이 다치신 것 같습니다. 빨리 앰뷸런스 좀 보내 주세요.” 기억은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도 생생했다. 3중대 행정보급관의 목소리는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나는 그때 학군단 교관으로 가지 못한 상태에서 대대 인사장교를 계속하는 중이었고 우리 대대는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 경계지역(GOP)에 투입되어 있었다. 당시 3중대는 철책선 안에서 지뢰를 제거하는 작전 중이었는데 큰 사고가 난 것 같았다.

나는 급히 대대 군의관과 함께 1/4톤 지프를 개량해서 만든 앰뷸런스를 타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앰뷸런스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실제 사고현장 몇 백m 후방이라 그곳까지 임시 들것으로 옮겨왔다. 중대장이 맨 앞에 들려 나오고 병사 두 명이 뒤따라 옮겨졌다. 응급조치를 하는 군의관은 반쯤은 정신이 없는 듯 보였다. 그 작은 차에 환자 3명에다 군의관, 나까지 탄 채 큰 길로 나와 연대에서 지원된 4/5톤 앰뷸런스에 옮겨 탔다. 중상을 입은 중대장은 의식이 희미한 상태에서도 연신 신음 같은 기도를 간간이 토해내고 있었다. 그를 바라보는 내 입에서도 기도가 흘러나왔다. “주여, 부디 이 어린 양을 긍휼히 여겨주옵소서….” 한시가 급했다.

정리=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