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김명호] 51시간이나 몰랐다고?

입력 2011-12-20 17:49


참 헛헛한 웃음밖에 안 나온다. 김정일이 사망한 지 51시간30분 동안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니….

이런 정보력 부재 사실을 거론하기조차 민망하다. 국가정보원과 국방부는 국회 정보위와 국방위 답변에서 “발표 사실을 보고 알았다. 주변국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미국이나 중국도 비슷하니 면피는 됐다는 뜻인지 모르겠다.

파키스탄이 미국에 시쳇말로 삿대질해 가며 대들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정보력 때문이다. 미국은 10년 가까이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 미국에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도 있고, 안달이 나도록 한 발짝을 뺄 수도 있는 나라가 파키스탄이다. 그럴 수 있는 힘은 파키스탄 정보부(ISI)와 군부로부터 나온다. 그들이 갖고 있는 테러 세력에 대한 정확한 정보 때문이다.

ISI는 미국으로부터 ‘테러 배후 세력’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조차 미국인에 대한 테러에 ISI가 일부 개입한 의혹이 있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런데도 파키스탄은 대테러작전에 협조한다는 이유로 미국으로부터 연간 30억 달러씩 원조를 받고 있다. 파키스탄이 미국과 테러세력 사이에서 이중플레이를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미국으로부터 현실적인 ‘대접’을 받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대테러작전 불협화음으로 양국 관계가 냉랭해지면 미국은 파키스탄을 달랜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날아가고, 상원 외교위원장과 합참의장이 ‘잘해보자’며 방문한다. 미국은 파키스탄 없이 대테러작전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

미국은 북한 정보를 우리보다 많이 알고 있다. 우리가 없는 첨단 위성이나 전자장비로 각종 정보를 훨씬 많이 포착해 분석해 낸다. 그렇더라도 북한 특성상 김정일 사망을 바로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결정적인 정보는 인간정보(HUMINT)로부터 나온다. 김정일의 전용열차가 북·중 국경을 넘는 것은 위성으로 잡을 수 있어도, 탑승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핵심 정보 1%는 인간으로부터 나오게 돼 있다.

지금 정부는 그런 게 다 끊어진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대규모 장례위원회가 구성되고, 주중 북한대사가 급거 귀국하고, 예고방송까지 나오는 51시간30분 동안 모를 리가 없지 않겠는가.

북한 정보 수집은 남한의 대북 정책이 보수적으로 가든 진보적으로 가든 상관없이 국가적 최우선 과제다. 북한 상황관리 능력은 항상 최상을 유지해야 한다.

한·미동맹이 그 어느 때보다 굳건한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양국이 북한 이슈를 접근하는 시각은 좀 다르다. 미국은 북핵문제가 거의 전부지만, 우리에게는 핵을 넘어서 통일이나 생존에 관한 문제다. 북한 문제에 관한 한 우리는 미국보다 앞서야 한다. 조만간 닥칠지도 모를 북한 급변사태나 통일 추진 과정에서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의 이익은 우리의 이익과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그때 우리의 생각을 관철해 낼 수 있는 무기, 즉 레버리지를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그것을 잃어버렸다. 정보가 부실한 정책은 허약하다. 그런 차원에서 지금 정부의 대북 정책은 허약하다. 겉으로는 위세가 당당하고 상대방을 조만간 굴복시킬 것 같지만, 말의 성찬이었지 현실적인 결과는 그렇지 못하다.

톰 도닐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가 파키스탄과 어려움을 겪어왔지만, 미국 국익을 보고 행동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파키스탄이 미국과의 관계에서 레버리지를 갖고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북한 관리 능력 부재,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워싱턴=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