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민 목사의 시편] 쓴맛 속에 담긴 깊은 맛
입력 2011-12-20 17:29
쓴맛은 깊은 맛이다. 단맛이 줄 수 없는 깊은 맛이 쓴맛에 있다. 쓴맛은 혀뿌리의 중앙부에서 느끼는 맛이다. 쓴맛이 깊다고 해서 쓴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인간은 달콤한 맛을 좋아한다. 사람은 달콤한 것을 맛보면 그 맛을 반복해서 추구한다. 달콤한 맛을 우리는 쾌락이라 일컫는다. 단맛은 노력하지 않아도 쉽게 느끼는 맛이다. 그런데 문제는 쉽게 느끼는 단맛이 우리 몸을 해롭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 인생을 파멸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음식을 먹을 때 음식이 너무 맛있으면 조심해야 한다. 조미료가 많이 가미된 음식일수록 맛이 있다. 탁월한 요리사는 조미료 없이 깊은 맛을 낼 줄 아는 사람이다. 그 경지는 쉬운 경지가 아니다. 고통스런 수련을 통해 터득할 수 있는 경지다. 쓴맛까지 가미해서 만들어낸 예술품이다. 입에 설설 녹는다고 말하는 음식을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음식이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입에 달수록 몸에는 독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너무 쉽고, 너무 달콤할수록 독이 될 수 있다.
인생에서 배운 교훈은 깊이 있는 삶을 위해서는 쓴맛 나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숙한 사람은 먼저 즐거움을 선택하고 후에 고통이라는 대가를 지불한다. 반면에 성숙한 사람은 먼저 고통을 선택하고 나중에 즐거움을 누린다. 영성 훈련이란 참된 즐거움을 위해 고통을 먼저 선택하는 것이다. 즐거움을 잠시 보류하고 고통을 먼저 선택하는 것이다.
인생의 쓴맛은 고난의 맛이다. 고난의 맛은 달콤하진 않아도 그 맛이 깊다. 커피의 맛은 쓴맛에 있다. 쓴맛을 음미할 줄 아는 사람은 깊은 맛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고난의 깊은 맛은 깊은 깨달음에서 온다. 가볍게 사는 사람은 고난의 쓴맛을 모른다. 반면 깊이를 추구하는 사람은 쓴맛을 음미하고, 쓴 나물을 좋아한다. 그는 쓴 약이 몸에 좋으며, 쓴 음식이 몸을 이롭게 할 수 있음을 안다.
쓴맛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쓴맛을 만드셨다면 우리는 쓴맛까지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때로 실패의 쓴잔, 상실의 쓴잔, 외로움의 쓴잔, 고통의 쓴잔을 마시게 하신다. 그 이유는 고통의 쓴잔이 인생의 깊은 맛을 더해주기 때문이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마신 잔은 쓰디쓴 고난의 잔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고난의 십자가다. 고난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는 쓴맛 속에 담긴 인생의 깊은 맛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험한 십자가를 사랑하는 것이다.
(LA새생명비전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