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사망] MB, 사망 4시간 뒤 日 출국… 대북 정보망 ‘구멍’

입력 2011-12-19 21:59


51시간30분. 정부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17일 오전 8시30분)부터 조선중앙TV 발표(19일 낮 12시)까지 이틀이 넘는 시간 동안 정부는 북한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가장 큰 사건을 낌새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김 위원장 사망 4시간 뒤인 17일 낮 12시40분 이명박 대통령은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일본으로 출국했다.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도 동행했다. 18일 오후 2시40분 귀국할 때까지 26시간 동안 북한엔 김 위원장이 없었고 남한에도 이 대통령이 없었다. 숱하게 우려돼 온 김정일 사후 북한군 지휘부 공백 사태가 마침내 벌어졌는데 그에 대처할 우리 군 통수권자도 자리를 비웠던 것이다.

19일 아침 청와대에선 이 대통령 생일파티가 열렸다. 71세 생일이자 결혼 41주년, 대통령 당선 4주년인 ‘트리플 기념일’이었다. 청와대 직원 200여명은 본관에 모여 불을 꺼놓고 있다가 오전 7시20분쯤 출근한 이 대통령을 맞이하며 ‘서프라이즈’ 파티를 열었다. 오전 8시부터 1시간30분가량 진행된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북한의 이상 동향은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오전 10시쯤 북한 조선중앙TV가 정오 ‘특별방송’을 예고했다. ‘중대발표’ 예고는 간혹 있었지만 ‘특별방송’은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때 외엔 사용된 적이 없는 용어다. 하지만 통일부 외교통상부 등 관련 부처에선 “북한이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중단을 발표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통일부 당국자는 특별방송이 시작되고 북한 아나운서가 검은 옷을 입고 나오자 사색이 돼서 장관실로 향했다. 류우익 통일부, 김성환 외교부 장관도 북한 방송을 보고서야 알았다고 한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북한 방송 발표 때 국방개혁법안 처리를 부탁하려고 국회에 가 있었다. 낮 12시20분쯤에야 국방부로 돌아가 북한군 동향을 점검한 뒤 국가안전보장회의에 참석했다. 정승조 합참의장도 전방부대를 방문했다가 낮 12시17분쯤 이 대통령 전화를 받고서야 급히 서울로 돌아왔다. 전군에 2급 경계태세가 발령된 건 낮 12시30분. 김 위원장 사망 52시간 만이다.

이런 상황은 정부의 대북 정보망에 구멍이 뚫렸음을 방증한다. 한나라당 소속의 권영세 국회 정보위원장은 “국가정보원도 몰랐던 것 같다. 상임위 차원에서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현 정부 들어 대북 정보력 부재는 수차례 지적돼 왔다. 지난 5월엔 방중한 김 위원장을 김정은으로 오인했고 천안함·연평도 사건과 2차 핵실험 때도 국정원 정보력이 도마에 올랐다.

김 위원장 사망을 먼저 감지한 건 증권가와 기업이었다. 북한의 특별방송 예고에 증권가엔 사망설이 퍼지며 주가가 급락했고 한 대기업 임원들은 중국 지사로부터 ‘이상 징후’를 보고받고 확인에 나서기도 했다. 당장 20일 국회 국방위, 외통위, 정보위 회의에서 원세훈 국가정보원장 등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될 전망이다. 민주통합당 안규백 의원은 “2008년 김 위원장 중병설 때 양치질 모습까지 파악한다고 자신하더니 이번엔 우리 군 통수권자의 공백 사태가 벌어졌다”고 비판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