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정철훈] 110년 만의 초대
입력 2011-12-19 17:33
시인이자 국문학자인 고려대 최동호 교수가 지난 8∼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진행된 올해 노벨문학상 시상식에 초대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문단 안팎의 화제가 되고 있다. 최 교수의 초청은 외형적으로는 ‘호암상 위원’ 자격이지만 내용적으로는 ‘국내 문인으로는 최초’라는 의미를 지닌다.
우리에게도 2000년 12월 1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시상식 당시 수십 명으로 구성된 축하사절을 보낸 경험이 없지 않지만 평화상을 제외한 모든 분야의 노벨상이 스톡홀름에서 열린다는 것을 감안하면 최 교수의 참관이야말로 노벨상의 본향에 다녀왔다는 의미가 없지 않다. 하지만 1901년 시상이 개시된 이래 올해로 110년의 전통을 가진 노벨문학상 시상식에 국내 문인 최초로 초대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그리 유쾌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초대받지 못한 것보다 초대받은 게 낫겠지만, 게다가 최 교수 개인으로서는 크나큰 영광이 아닐 수 없겠지만, 대체 110년 만의 초대라니. 세계 10위를 자랑하는 국력의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어느 정도 대접을 받고 있는지는 자명해진다. 딴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개 회원국 중 노벨상 시상식 실황 중계를 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뿐이라고 한다.
110년 만의 초대엔 자업자득의 측면도 없지 않다. 연미복을 차려입고 만찬장에 앉아 ‘남들의 잔치’를 지켜봐야 했던 최 교수의 소회가 어떠했는지 알 길은 없지만 110년 만의 초대라는 측면에서 1881년(고종 18년) 새로운 문물제도를 견학하기 위해 일본에 파견된 신사유람단을 떠올리게 된다. 시상식 후 스톡홀름 시청 중앙홀로 자리를 옮겨 이어지는 만찬이야말로 유럽 사교 문화를 고스란히 재현하는 현장이기도 하다. 만찬장에선 스웨덴 국왕 부부와 총리를 비롯한 수백 명의 국내외 저명인사들이 지정된 테이블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사교를 하기 마련이다.
노벨상 시상식을 인류의 축제로 승화시키려는 유럽의 문화 귀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포크와 나이프를 잡아야 했던 최 교수의 미주알이 어느 만큼 근질거렸을 것임은 짐작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우리에게 노벨상 시상식 현장은 그만큼이나 생소하고 낯선 문화로 치부된다. 하물며 우리가 근자 들어 노벨문학상을 열망하고 있다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칸영화제나 베를린영화제, 아카데미시상식 등은 레드카펫 행사에서부터 스타들의 표정 하나, 옷차림 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실황 중계를 하는 마당에 노벨상 시상식에 대해선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쯤으로 치부하는 건 국가 차원의 지원이나 지향이 전무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6·25전쟁 직후부터 오늘날까지 한국은 전쟁고아를 비롯한 어린이들을 스웨덴 등 유럽국가로 입양시켜 왔다. 현재 스웨덴엔 한국인 입양아가 1만명에 육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는 그들의 존재에 대해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 입양아들이 한국과 스웨덴을 이어주는 중요한 인적 네트워크로 부상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입양아의 경우엔 사후관리가, 노벨상의 경우엔 사전관리가 좀 더 이루어져야 할 까닭이 여기에 있다.
세계인의 축제인 노벨상 시상에서 우리는 거의 소외돼 왔음을 감안할 때 내년부터라도 좀 더 섬세하게 세목을 챙길 필요가 있는 것이다. 시상식 현장에 대한 실황 중계까지는 아니더라도 주요 장면에 대한 녹화 중계는 가능하지 않을까. 우리가 그토록 노벨문학상을 열망한다면 우리의 관심 자체를 스톡홀름 쪽으로 정조준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내년엔 어느 분야에서든 참관자 자격이 아니라 수상자 자격으로 노벨의 초대를 받는 걸 지켜보고 싶다.
정철훈 문화생활부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