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의 시편] 상생의 이미지, 소통과 화해

입력 2011-12-19 17:43


한국교회에 한동안 무차별한 폭로전이 있었다. 물론 폭로전에 나선 분들도 교계 개혁의 슬로건과 정의감으로 그런 일을 했다. 그때 나는 개혁은 사랑과 화해가 함께 가야 한다면서 할 수만 있으면 그렇게 하지 말라고 목이 메도록 사정했다. 그런데 그분들은 부정으로 쌓아올린 기존의 탑을 헐어버리고 다시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폭로 기자회견을 감행했다. 그 결과 신문과 공중파 방송에 세상의 선거보다 교계의 선거가 더 돈 선거라는 것이 보도되면서 한국교회 이미지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실추됐다. 그리고 마침내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어느 기관에 법원이 파송한 임시대표회장이 세워졌다.

그분도 나름대로 공의를 앞세운 여러 가지 개혁 작업을 하면서 이런 말씀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교계를 개혁하고 나면 교회를 떠났던 수많은 청년들이 다시 교회로 몰려올 것이다.” 물론 그분이나 기자회견을 주도하셨던 분들의 생각과 말도 맞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교회를 떠났던 청년들이 다시 몰려오거나, 아니면 장년들이 돌아온 것도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교계는 여전히 몸살을 앓고 있고 신음하고 있다. 왜 그런가? 현대는 이미지 시대이기 때문이다. 과거는 토지나 자본이 재산 가치였다. 그러나 현대는 그 어떤 것보다도 이미지가 큰 재산이고 제3의 힘이다.

그래서 요즘은 CF도 이미지 위주로 한다. 왜냐하면 현대인은 옳고 그른 것보다도 이미지의 명암(明暗)에 따라 감정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미지는 시시각각 변한다. 컴퓨터 시대가 오면서 네티즌들이 생겨났다. 그런데 최근에는 냄비처럼 쉽게 뜨거워지고 쉽게 식어버린다고 하여 ‘냄비즌’이라고 한다. 냄비즌일수록 이미지가 한번 훼손당하면 옳고 그른 것을 떠나서 벌떼처럼 달려들어 공격한다. 과거 쇠고기 파동이나 FTA 논란 때처럼 자신의 소신과 원칙이 아니라 누군가 선동을 하면 무조건 따라가는 것이다. 요즘은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를 통해 이미지와 감성의 문화가 더 확장되고 있다. 물론 그것들이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자칫 검정 것도 희게 하고 흰 것도 검정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악용의 소지가 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다른 종교에 비해 너무 사회적 소통과 이미지 관리에 소홀했다. 기독교를 ‘개독교’라 하는 등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는 부정적인 말들이 사이버 상에 난무하고 있다. 그런 나쁜 말과 이미지가 선교에 얼마나 역작용을 하고 있는가. 특히 냄비즌들은 사례에 강하다. 한번 나쁜 보도가 되면 순간 지나칠 수 있지만, 계속 보도되면 사실이 아니더라도 진실로 굳어져 버린다. 그때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회심할 가능성이 희박하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초극할 수가 없다. 더 늦기 전에 깨닫자. 한국교회의 대사회적 이미지 회복을 위해 더 이상 정쟁을 멈추자. 소통과 화해의 문화, 상생의 이미지를 창조하며 비상하자.

<용인 새에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