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본 2011년-① 안철수] 安風 4개월에 정치 풍비박산

입력 2011-12-18 18:35


고된 삶에 지친 시민과 갈 길 잃은 젊은이들에겐 위로가 필요했다. 막막한 앞날을 이끌어 줄 멘토(스승)를 기다렸다. 그러다 그가 나타났고 그를 향한 지지는 열병처럼 번져나갔다. 그를 중심으로 사람들에게 잠재된 변화의 열망이 폭발했고, 기성 정치권은 초토화됐다.

안철수(49)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지난 8월말 대중 앞에 본격 등장한 그는 단 4개월 만에 정치권은 물론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접수’하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안풍(安風·안철수 돌풍)이 지나간 여의도 정가는 순식간에 폐허가 됐고 지금도 회복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기성 정치권에서는 그 누구도 ‘청춘콘서트’로 2년 전부터 전국을 누비며 강연하는 안 원장의 존재에 주목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극히 온건하게 출발한 이 콘서트의 파괴력은 가공할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민주당 모 중진 의원은 “소도시인 내 지역구는 1년 365일 차가 안 막히는 곳인데, 올해 딱 한 번 차가 막힌 적이 있었다. 바로 안 원장이 청춘콘서트를 하던 날이었다”고 했다.

청춘콘서트를 통해 쏟아낸 안 원장의 사회적 발언들은 결국 거대한 정치적 힘으로 전화됐다. 집권여당과 60년 전통의 제1야당 서울시장 후보들은 안 원장이 지지한 박원순 시민후보에게 나가떨어졌다. 안 원장이 뭘 하든 그 결과는 예상 이상으로 나타났다. 50%의 지지율을 가진 그가 5%의 박 후보에게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했을 때 대중들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정치인의 등장에 환호했다. 지난 11월 초 1500억원대 기부 발표는 안 원장에 대한 비판세력을 아예 녹다운시켰다.

안풍이 가져다 준 일련의 신선한 충격은 정치권 재편으로 이어졌다. 야권은 야권통합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고, 한나라당은 비상대책위 체제로 전환했다. 당도 없고 참모도 없는 안철수식(式) ‘1인 정치’에 기성 정치권이 어찌할 바를 모른 채 허둥지둥한 한 해였다.

그러나 이 신드롬을 좋게 보는 시각만 있는 건 아니다. 사람들이 현 정권과 여당에 대한 반감 때문에 민주당을 대리 지지한 측면이 있듯, 안 원장 신드롬이 기성 정치권을 혐오하는 심정에서 오는 반사이익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안 원장에 대해 알려진 게 불충분한 상황에서 신비주의적 착시를 일으키고 있을 개연성도 있다. 안 원장이 대중의 검증 심판대에 설 경우, 지금과 같은 열광적 지지는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존재가 올 한해 우리 정치와 사회에 신선하고 커다란 바람을 일으켰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 이미 많은 긍정적인 결과를 산출하기도 했다. 구태를 청산할 신선한 충격이라면 시민들은 제2, 제3의 ‘안철수’를 언제든 반길지 모른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