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감독이 어려운 이유… 핌 베어벡 사례

입력 2011-12-18 17:39

팬들은 시원한 득점 원했지만 2007년 아시안컵서 골가뭄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이 왜 어려운 자리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2007년 핌 베어벡 감독의 자진사퇴를 들 수 있다.

베어벡 당시 대표팀 감독은 그 해 7월 28일 인도네시아 팔렘방에서 벌어진 2007 아시안컵 일본과의 3·4위전 승부차기 승리 뒤 “이번 아시안컵에서 우승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감독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등 당시 잉글랜드에서 뛰던 3인방이 모두 부상으로 베어벡호에 합류하지 못한 상황에서 아시아 3위면 괜찮은 성적 아니냐고 항변할 수 있지만 문제는 경기 내용이었다.

베어벡호는 사우디, 바레인, 인도네시아와의 조별리그 3경기에서 1승1무1패(조 2위)로 간신히 8강에 올랐다. 이란과의 8강전(승부차기 승리), 이라크와의 4강전(승부차기 패배), 일본과의 3·4위전 모두 0대 0으로 필드골을 한 골도 넣지 못했다. 조별리그 3경기에서 각 한 골씩 총 3골을 넣은 것이 대회 득점 전부였다.

베어벡호가 조별리그 2차전 바레인전에서 1대 2로 패하면서 여론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이후 경기에서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베어벡 감독이 대회 전 “2007 아시안컵 우승이 목표”라고 했던 발언이 공수표 평가를 받으며 경질 여론이 폭발했다. K리그 구단들과의 선수 차출 갈등을 부드럽게 풀지 못한 경기 외적 요인도 ‘베어벡으론 안된다’는 비판의 불쏘시개가 됐다.

한국 축구팬들은 대회 성적도 물론 중요하지만 매 경기마다 시원한 득점으로 상대를 압도하기를 바란다. 감독이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대표팀을 운영하기 힘든 여론 구조다.

한국 축구 대표팀 첫 외국인 지도자인 디트마르 크라머(독일)는 1991년 포르투갈 세계청소년대회 때 남북이 단일팀을 구성키로 합의했지만 당시 이임생 등 4명의 올림픽 대표팀 선수 차출을 거부했다. 남북관계 등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은 크라머는 감독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은 그라운드만 바라봐선 안되는 존재다.

이용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