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철휘 (16) 원치 않던 중대장 또 맡게 되자 ‘재구상’ 영예가…
입력 2011-12-18 17:54
고등군사반(OAC) 교육을 수료한 뒤 서부전선의 분대장을 양성하는 제3하사관학교의 중대장 요원으로 분류됐다. 나는 이미 전방에서 중대장 근무를 했기 때문에 학교장 신고를 할 때 중대장을 하는 것보다 교관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아무래도 지휘관보다는 교관을 하는 것이 부담이 적고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보병학교에서 하지 못한 교관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미련이 아직도 가슴 한켠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특별히 나는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면서 이미 초등학교 준교사 자격증과 중등학교 2급 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상태였다. 그 당시만 해도 나처럼 교사 자격증을 두 개나 가지고 있는 군인은 드물었기 때문에 멋진 교관이 되어 보겠다는 개인적 욕심과 자신감도 있었다.
그랬더니 학교장님께서는 “잘 알았다. 네 바람대로 교관을 시켜주겠다. 그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지금 중대장 중 한 사람이 보안사령부로 가기 위해 면담을 하고 왔는데 아직 결정이 나지 않았다. 지휘관 보직인 중대장을 공석으로 놔둘 수는 없기 때문에 그 사람이 보안사령부로 가면 너는 중대장을 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교관으로 보내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보직도 없이 1주일을 대기하던 중 결국 그 중대장이 보안사령부에 선발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2차 중대장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토록 달갑지 않게 여기며 억지로 맡게 된 중대장을 하면서 ‘재구상’을 받게 됐으니 참으로 하나님의 계획은 알 수 없는 오묘한 것이었다. 재구상은 훈련 도중 부하가 실수로 잘못 던진 수류탄을 몸으로 덮쳐 자신은 산화하면서 부하 장병들의 목숨을 구해낸 고(故) 강재구 소령의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으로 군인에게는 최고의 영예다.
당시에는 사단 내에서 가장 탁월한 중대장 한 명에게만 주는 상이었다. 나는 3군사령부 직할 부대 중대장 가운데 선발되어 받게 된 것이다. 내가 재구상을 받은 것은 그것 말고도 다른 의미가 있었다. 재구상은 통상 정규 사관학교 출신이 받는 게 관례였는데 나는 학군(ROTC) 출신으로서 그 상을 받음으로써 더 빛이 났을 뿐 아니라 그 덕분에 우수한 장교로 인정 받아 육군본부 인사운영감실 보병 소령 기록장교로 뽑혀 갔다. 나는 거기에서 ROTC 13기 동기회인 ‘녹성회’도 만들어 초대 회장을 맡는 등 이른바 동기생들 중에서 선두그룹의 한 사람이 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재구상을 수상한 감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나는 어떻게 하든지 후방에서 근무하거나 교관 같은 편한 직책에서 근무하고 싶어 했지만 하나님이 그 모든 길을 막으셨다. 그리고 전방에서 중대장 생활을 하도록 하고 그 결과로 재구상 수상이라는 영광을 얻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한다. 길을 막으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다시 길을 열어서 영광의 자리에 앉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다. “여호와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신 28:13) 재구상 수상을 계기로 나의 군 생활은 더 높은 정상을 향하여 비상하는 나래를 펼치게 됐다.
정리=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