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한살 차이 천재화가 부부, 그 운명적 만남과 아픈 삶

입력 2011-12-16 17:36


프리다 칼로, 디에고 리베라/르 클레지오/다빈치

콧잔등에서 일자로 붙은 짙고 풍성한 눈썹과 바스라질 듯 여린 몸매의 여인. 그 옆에 코끼리 같은 몸집에 허풍과 향락, 질투, 관능이 풍겨 나오는 두툼한 살집의 남자가 서있다. 20세기 남미를 대표하는 화가 부부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

프랑스의 노벨상 수상작가 르 클레지오는 1967년 태국에서 군인으로 복무하던 중 아동매춘을 고발했다가 멕시코로 쫓겨난다. 그때의 기억은 멕시코의 빛, 먼지, 냄새로 몸속에 스며들었을까. 작가는 10여년 뒤 “스물한 살의 나이차와 세 배에 가까운 몸무게 차이를 뛰어넘은 두 사람의 만남과 사랑”을 그린 ‘프리다 칼로 디에고 리베라’를 냈다. 1920∼30년대 혁명 후 멕시코를 배경으로 두 사람의 삶과 예술을 인디오의 원색처럼 강렬하게 포착한 전기문학의 명작. 몇 년 전 출간된 책이 깔끔하게 정리돼 다시 나왔다.

어릴 적 앓은 소아마비로 다리를 살짝 절던 프리다는 18살 되던 해 교통사고로 척추와 골반, 오른 발이 으깨졌다. 그녀의 운명이 된 “그림과 블랙 유머, 고독”이 시작된 건 이 때부터. 그림을 그리게 된 프리다는 만난 적도 없는 ‘전설적 화가’ 디에고와 사랑에 빠진다. 디에고를 현실에서 마주친 건 1923년. 디에고가 37세, 프리다가 16세가 되던 해였다. 둘은 6년 뒤 결혼한다. 꿈속 영웅과의 일상은 행복했을까. 러시아 화가와 결혼한 뒤 끝없이 여자를 옮겨 다닌 바람둥이 디에고와의 하루하루는 늘 위태로웠다. 디에고는 몇 년 뒤 프리다의 여동생과 불륜에 빠지기도 했다.

육체적 고통과 그만큼이나 끔찍했던 디에고와의 사랑. 프리다가 견뎌낸 통증의 삶은 마지막 한마디에 응축됐다. 죽기 전 그녀는 이런 말을 남겼다. “행복한 외출이 되길,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살아있을 때 힘과 권력을 쥔 건 디에고. 하지만 반세기 넘은 시간이 흐른 지금 프리다를 ‘디에고의 아내’로 부르기보다 디에고를 ‘프리다의 남편’으로 부르는 일이 잦아졌다. 거장 남편을 넘어선 드문 여성 작가로 프리다의 이름은 오래 기억될 것 같다. 두 사람의 작품과 사진이 화보처럼 충실한데다 연보 같은 정보가 촘촘해 두 사람의 삶과 예술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백선희 옮김.

이영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