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新재정협약 약발’ 다했나… 신용평가사 “해결책 불충분” 신용등급 강등 시사

입력 2011-12-13 18:04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위기의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영국을 뺀 유럽연합(EU) 26개국이 통화를 넘어 재정까지 하나로 묶는 ‘신(新)재정협약’에 동의했지만 단 며칠 만에 약발이 다했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신용등급 강등이 불가피하다”고 혹평을 쏟아냈고, EU는 ‘나만 살겠다’는 영국에 보복할 기세다.

◇“협약 만족 못해”=무디스는 12일(현지시간) 내년 1분기 EU 회원국의 신용등급을 재검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지난 8∼9일 열린 EU 정상회의의 결과물이 새로울 게 없다는 것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EU 정상들의 합의는 불충분하다”며 또 다른 해결책 모색을 압박했고, 피치 역시 “포괄적 해법 부재로 인해 유로존 신용 위험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신용등급 강등을 시사했다.

이들 3대 신평사의 회의적 시각은 곧바로 금융시장을 강타했다. 이날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유로 가치는 전거래일보다 1.5% 하락, 2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탈리아, 스페인의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도 모두 올라 6.54%, 5.78%를 기록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위기로 인해 선박 가치가 하락해 해운업계가 25년 만에 최악의 상황에 빠졌다”며 해운업계 줄파산을 우려했다.

◇영국에 반격나선 EU=EU가 ‘신재정협약’에 유일하게 거부권을 행사한 영국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특히 영국만을 타깃으로 삼은 보복성 규제를 만들 것이란 얘기까지 흘러나오는 상황이다. EU는 유럽 내 금융거래세 도입 등 금융 관련 규제를 결정할 권한을 갖고 있다. 실제 올리 렌 EU 통화·재정 담당 집행위원은 이날 “영국의 독자 행보는 유감스럽다”면서 “런던의 은행가들과 금융기업을 고려했다면 이런 결정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EU 규제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경고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앞으로 EU가 제안해 논의할 금융 규제에서 영국은 불리한 입장에 처했다고 분석했다. 예를 들어 EU는 금융거래세가 도입될 경우 유럽에서 걷힐 세금 중 절반 가까이를 내야 하는 영국 금융권을 압박할 수 있다. 또한 현재 영국에만 위치한 청산소(파생상품 거래 보증 등 관리하는 기관)를 독일과 프랑스 등으로 옮기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런던의 글로벌 금융 도시 위상은 추락할 수밖에 없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영국 때문에) 유럽은 이제 두개가 됐다”며 영국을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이에 대해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우리는 지금처럼 EU 회원국이길 원한다”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김아진 기자 ahjin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