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김진희] 신국민주의와 오바마의 개혁정치

입력 2011-12-13 17:28


지난 12월 7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캔자스주 오사와토미에서 ‘신국민주의’를 내세우며 2012년 대선을 향한 포문을 열었다. 100년 전 혁신주의 정치가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신국민주의’를 처음 언급했던 인구 5000명의 이 소도시에서 오바마는 ‘평등한 기회’와 ‘공정성’을 다시금 강조해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개혁정치 속에서 되살리려고 했다.

공화당 출신 루스벨트의 언어를 빌린 이 연설에서 오바마는 불평등 확산이 ‘우리 시대의 핵심 문제’라고 공언함으로써 신자유주의적 가치에 고착하는 공화당을 비판함과 동시에 최근 전국적으로 확산된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의 저항 세력을 자신의 지지자로 끌어들이려 했다. 보수 언론은 ‘포퓰리즘’이라는 라벨을 붙였고 공화당은 오바마가 자신의 경제 실책을 공화당에 떠넘기려 한다고 비난했다.

평등한 기회와 공정성 강조

여름 내내 워싱턴을 달궜던 부채 협상에서 방어에 급급했던 오바마를 비난했던 로버트 라이시는 이를 오바마가 행한 ‘가장 중요한 경제연설’이라고 논평했다. 레이건 정권 이래로 ‘파이의 크기’가 아닌 ‘파이의 배분’을 핵심 문제로 거론한 미국 대통령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라이시가 이 연설에서 일말의 가능성을 기대한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런데 과연 2008년 선거에서 ‘예스 위 캔’과 ‘담대한 희망’을 심어줬던 오바마가 다시 개혁의 새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까?

구태정치를 청산할 세대교체와 초당적 시민정치를 앞세워 당선한 오바마는 그러나 재임기간 동안 스타일은 있으나 콘텐츠가 없다는 비판을 잠재울 만한 성과를 일궈내지 못했다. 당파성 아닌 초당적 화합을 내세웠으나 국내외 정책은 오히려 전임 공화당 행정부와 질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시민의 힘을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시민이 아닌 금융권의 이해를 더 챙겼다는 비난도 면키 어렵다. 인터넷 시대 풀뿌리 민주주의의 견인차이자 멀리 대한민국에서조차 대대적인 벤치마킹의 대상이 된 ‘무브온(Move on)’은 급기야 오바마 선거 기구로 전락돼 월스트리트 점거자들이 거리를 두는 기피 대상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오바마의 ‘신국민주의’는 그의 실책을 잊을 때에만 설득력을 갖는다. 금융권과 월스트리트의 자금이 오바마 정권에 더 많이 투입되었다는 사실, 금융권은 구제됐으나 서민의 일자리 창출과 복지에 대한 뚜렷한 성과가 없었다는 냉혹한 현실이 그를 가로막는다. 루스벨트의 ‘신국민주의’가 아동노동 금지, 최저임금법, 대자본 규제와 부자증세 같은 정책적 성과를 기반으로 한 것과 달리 오바마는 그의 언명을 채울 성과가 턱없이 빈약하다.

정책화 여부가 성공 변수

실정의 원인을 오롯이 그에게만 돌릴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부시 행정부의 실책과 2008년 금융위기 해결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떠맡은 상태에서 대통령직을 출발했고 공화당이 발목을 잡았으며 금권의 영향력을 용이하게 하는 미국의 정치환경이 운신의 폭을 좁혔다. 그러나 이를 감안하고라도 3년 전 그를 지지했던 중산층과 서민, 노동자가 등을 돌리게 된 책임은 무엇보다 그가 안고 갈 몫이다.

이제 관건은 그가 공언한 ‘신국민주의’의 어젠다를 구체적 정책으로 제도화시키는가의 여부에 있다. 그러나 부의 불평등을 확산시키는 제도 수정은 금권정치의 폐지를 요구하며 이는 곧 시스템적 재구성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임기 내에 가시적 결과를 가져올지에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자신의 언명에 합당한 개혁정치를 추진한다면 오바마는 2012년 선거를 넘어 미국의 미래를 결정할 새로운 조타수가 될 것이다.

김진희 경희사이버대 미국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