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철휘 (13) 어긋난 ‘학군단 교관’ 꿈… 그러나 주님은 새 길을
입력 2011-12-13 17:29
상관으로부터 신임을 얻고 미래가 보장된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어서 빨리 학군단 교관으로 갈 날이 오기만 기다렸다. 그런데 소식이 없었다. 이미 보름 전부터 다른 부대에 근무하는 동기생 중에는 학군단으로 차출돼 가는 사람이 있다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다시 대대장님께 휴가를 받아 육군본부에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러 갔다. 지금 생각해봐도 소대장 시절 모셨던 대대장님은 상하관계를 떠나 큰 형님처럼 자애로운 분이셨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불호령을 내리고 무서운 분이셨지만 나에게는 언제나 따뜻하게 대해주시고 진심어린 충고를 해주셨다.
관련 부서에 도착해 “이미 학군단 교관 발령 통보날짜가 보름이나 지났는데 왜 나는 아직도 명령이 안 나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담당자는 오히려 나에게 화를 내며 이렇게 말했다. “학군단 교관 발령이 날 때까지 보직을 변경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했지 않느냐. 근데 너는 이미 대대 인사장교로 명령이 나 있는 탓에 교관 선발에서 제외된 거다.”
학군단 교관으로 지원하고 명령을 기다리는 사이에 후임 소대장이 전입을 왔다. 나는 인수인계를 하고 부중대장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대대장님이 부르시더니 “어차피 학군단 교관으로 갈 것이니 그동안 대대 인사장교 대리근무를 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임시로 대대 인사장교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장교인사에 대한 명령권이 있는 연대본부에서 나를 대대 인사장교로 보직 명령을 내버린 것이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것만 같았지만 하는 수 없이 나는 대대 인사장교로서 전방에서 계속 생활을 하게 됐다. 그때는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하나님께서 나의 보직을 가로막고 새로운 선물을 준비해주신 것이었다.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시 37:24) 그러나 그때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을 알 까닭이 없었던 나의 마음은 너무나 후방에 오고 싶었다. 학군단 교관을 하면서 대학원 공부도 하고 결혼도 해 따뜻한 가정도 이루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학군단 교관의 꿈은 허무하게 날아가 버리고 대대 인사장교를 마친 후에는 연대 인사장교로 계속 근무해야 했다.
그러나 이왕 이렇게 된 것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고 중대장은 물론 전방 위주로 야전생활을 해서 나중에 장군까지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됐다. 그런데 전방 중대장을 하고 있는 선배들의 현실을 보면서 마음이 흔들렸다. 야전부대 중대장의 일상은 너무나 힘들고 초라하게 보였다. 보통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업무를 하고 그 이후에는 관사나 독신장교숙소(BOQ)로 퇴근해 개인 여가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이 병영에서의 정상적인 장교생활이다. 그러나 전방 중대장들의 일과는 시작되는 시간도 끝나는 시간도 없이 계속 부대 내에 머물면서 밀려 있는 일들을 처리해야만 했다. 휴가는 거의 갈 수 없을 정도로 바빴다. 얼굴은 새까맣게 타고 행색이 말이 아니었다. 그런 중대장들의 모습을 보니 야전에서의 군 생활이 별로 매력이 없어졌다. 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정리=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