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살 된 ‘동구리’… 여전히 깜찍하지만 철들었네
입력 2011-12-11 17:35
하늘에선 컬러 대나무가 비처럼 후드득 내리고, 알록달록 매화꽃이 흩날리는 물결 위 조각배에 몸통보다 큰 얼굴로 미소를 띤 채 앉아 있는 아이. 동글동글 귀엽게 생겼다고 해서 이름 붙은 ‘동구리’는 권기수 작가의 작품에 10년째 어김없이 등장하는 캐릭터다.
세월이 흘러 동구리도 어느덧 열 살이 됐지만 깜직하고 발랄한, 막내동생 같은 이미지는 변함없다.
2000년대 초반부터 국내외 전시를 통해 주목받은 작가의 대규모 개인전이 ‘리플렉션(Reflection):明鏡止水(명경지수)’라는 타이틀로 31일까지 서울 신사동 갤러리현대 강남에서 열린다. 동구리 탄생 10년과 불혹(40세)의 나이에 접어든 작가의 작업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이번 전시에서는 회화, 조각, 설치, 영상 등 이전 작품 및 신작 40여점을 선보인다.
신작 ‘리플렉션’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의미를 담은 작품이다. 지난 주말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마흔 살이 되니 문득 그동안 살아온 길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라는 고민이 들었다”며 “모난 생활을 오래 했는데 각을 깎지 않고도 뭔가 덧붙여 타고난 본성을 유지하면서 둥글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라는 반성 끝에 나온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신작은 울긋불긋한 배경 속에서 웃고 있는 동구리는 여전하지만 수면에 반사돼 나타나는 또 다른 동구리의 모습이 한 화면에 표현됐다. 원래의 동구리와 물에 비치는 동구리를 통해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작업의 변화는 최근 몇 년 사이 결혼을 하고 세 살짜리 딸과 대화를 나누고 작업실을 옮기는 계획을 세우는 등 생활의 변화에서 비롯됐다.
홍익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중국 위(魏)·진(晉) 시대에 거문고와 자연을 즐기며 청담(淸談)으로 세월을 보낸 죽림칠현 이야기나 조선시대 화가 강희안의 ‘고사관수도’ 등을 차용해 현실에 대한 도피, 유유자적한 삶, 이상향에 대한 동경을 표현했다. 동구리는 세상 시름 잊고 행복하게 살아가고픈 작가 자신과 보통 사람들의 심경을 대변하는 화자인 셈이다.
“사실 동구리의 웃음은 저의 어려운 시절 모습을 반영한 아이러니의 미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외환위기로 어깨가 처진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했으니 그것 또한 아이러니죠. 이번 전시의 신작에 자주 등장하는 무지개도 제 자신에게 결여된 어떤 존재를 이어주는 이상적인 매개체이지만 관람객들이 이를 통해 어떤 희망을 발견한다면 그것도 좋겠지요.”
국내보다 해외 전시가 더 많이 잡혀 있는 그는 “동구리가 너무 쾌활하고 밝게만 비쳐서 그런지 팝아트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다”며 “굳이 변명하지 않고 꾸준히 작업을 해나가면 동구리 형상보다는 그 뒤에 담긴 이야기에 주목해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관람객들이 ‘화랑(갤러리) 전시는 무료 관람’이라는 사실을 잘 모르는데 꼭 좀 알려달라”고 당부했다(02-519-0800).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