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인권 현주소] “좋아서 한 것… 경험 몇 번?” 모욕·차별에 두 번 눈물
입력 2011-12-08 17:25
여성 장애인 성폭행 피해자들은 가해자뿐 아니라 경찰조사와 재판 과정에서도 2차 피해를 입기 쉽다. 장애인들은 고용과 교육, 각종 서비스에서도 차별을 받고 있다.
◇성폭행 보호 사각지대에 놓인 장애인 여성=지난해 6월 A씨는 지적·청각·시각 장애를 앓고 있는 딸 B양이 대학생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해 경찰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장애인에 대한 아무런 배려가 없어 사실관계를 명확히 밝히기 어려웠다. 오히려 경찰은 “좋아서 한 화간”이라며 사건을 종결하려 했다. 법정에서도 가해자 측 변호사는 B양에게 “성적 경험이 몇 번이냐?”고 추궁하며 모욕감을 줬다. 이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된 사례다.
법원의 장애인 여성 성폭행 판결에서 ‘항거불능’ 여부도 지속적인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달 서울고법은 지적장애 3급과 청각장애 2급인 장애인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은 이모(24)씨에 대해 “피해 여성이 항거불능인 상태였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이에 앞서 지난 10월에는 서울중앙지법이 3급 지적 장애인을 성폭행한 정모(27)씨 등에 대해 “특별한 거부의사가 없었더라도 피해자가 정신 장애로 인해 성관계에 저항하는 것이 곤란한 상태를 이용했다”는 취지로 판결, 항거불능 상태를 폭넓게 인정했다. 이에 따라 법원이 항거불능 여부를 자의적으로 판단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한국여성장애인연합 등은 “성폭력특례법 6조의 항거불능 용어를 삭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지하철 화장실, 보험가입도 차별=국가인권위원회가 2001년 11월 25일부터 올해 10월 31일까지 약 10년간 다룬 차별·진정사건 1만1286건 가운데 차별 사유가 ‘장애’인 사건이 4372건으로 38.7%를 차지했다. 사회적 신분에 의한 차별(10.7%), 나이(7.7%), 성별(3.9%)에 의한 차별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 중 가장 일반적인 것이 고용 차별이다. C씨는 2003년 회사 출장 도중 사고로 뇌병변 장애를 받고 2005년 복직했다. 산재 처리 후 회사로 복직했지만 회사에서는 여러 지역 지사로 발령을 냈고 업무도 주지 않았다. 이후 C씨는 업무실적이 없다는 이유로 사직을 강요받았다.
5급 시각장애인인 D씨는 정규직채용공고를 보고 입사했으나 입사 뒤 일방적으로 기간제로 바뀌었다. D씨는 시각장애인용 ‘확대화면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를 요구했지만 “회사에서 나가라”는 말만 들었다.
각종 공공시설에도 차별은 존재한다. 수도권 지하철 내 장애인화장실은 남녀공용으로 설치돼 지난 8월 국가인권위원회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장애인 단체들이 지속적으로 문제를 지적했음에도 서울메트로 등은 비용부담 때문에 개·보수가 어렵다고 주장했다. 결국 인권위가 개입해 지하철 역사 내 장애인 화장실을 남녀 공용으로 설치한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19조 제4항에 따른 차별행위라고 판단하고 국토해양부장관과 서울특별시장에게 예산지원을 권고했다. 장애인은 보험 가입과 대출에서도 차별받는다. 청각장애 2급인 특수교사 김모(여)씨는 한 공제회의 종합보험에 가입하려고 했으나 보험가입을 거부당했다. 인권위는 지난 8월 ‘장애인차별금지법’ 등 법령과 규정을 준수하여 진정인의 보험청약건을 재심사할 것을 권고했다.
지난달 인권위가 발간한 ‘2010-2011년 인권상담 사례집’에 따르면 시각장애인에게 점자영장을 제시하지 않고 압수수색한 사례, 장애인 연금 신청을 받는다는 명목으로 장애 부위를 컬러 사진으로 제출하게 한 사례 등도 있었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