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한민족교회를 가다] 오직 믿음으로, 오직 조국사랑! 100년 이어오다

입력 2011-12-08 14:59


재미 한인지도자 요람, 상항한국인연합감리교회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주다스트리트 3030. 미주에서 하와이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1903년), 로스앤젤레스한인교회(1905년)에 이어 세 번째로 오랜 역사를 지닌 상항한국인연합감리교회가 있는 곳이다. 태평양 해변과 샌프란시스코의 명물 골든게이트교(금문교), 골든게이트 내셔널파크 등으로부터 멀지 않아 주변 경관이 수려하다.

이 교회는 1903년 9월 도산 안창호 선생 등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친목회를 조직한 게 발전돼 1905년 상항한인감리교회로 세워졌다. 처음엔 개인주택을 임차해 사용하다 몇 차례 이전을 거듭해 이름도 바뀌고 지금의 자리에 안착했다. 최근 기자가 이 교회를 찾은 것은 초기 한인선교사로 중국 산둥(山東)성에서 활동하다가 미국으로 떠난 김영훈 사병순 목사의 행적을 추적하기 위해서였다. 교회 내 사진전시관에서 김영훈 목사의 조선 독립운동 시절을 증명해 줄 소중한 사진 2장을 찾아냈다. 아울러 초기 교회 교우 명부에서 이민사회와 독립운동을 이끌어간 지도자 이름을 속속 확인할 수 있었다.

◇독립운동과 재미 한인지도자들의 요람=20세기 초중반 샌프란시스코 한인 지식인 상당수는 상항한인감리교회에 출석했다. 일제의 조선 침략행위에 대해 왜곡된 발언을 한 스티븐스를 저격한 장인환 의사, ‘공립협회’ 회장과 ‘공립신보’ 발행인으로 활동한 정재관, 대한인국민회 회장으로 활약한 백일규, 멕시코와 샌프란시스코 주변 지역, 하와이 선교에 공헌한 황사용, 한인교회와 민족운동을 이끈 윤병구, 한인 사회와 교회 발전을 위해 일한 양주은 김필권 김성권 장혜순 등 이루 셀 수도 없다. 월간 잡지 ‘대도’ 주필로서 복음과 구국의 의지를 이민사회에 심어주었던 양주삼 목사가 초대 목회자다.

이 교회는 설립 초기부터 젊고 푸른 청년교회를 지향했다. 지교회를 세우는 데도 열심이었다. 1907년부터 새크라멘토와 비살리아에 교회를 세운 데 이어 로스앤젤레스한인교회 리들리한인교회 등과 함께 멕시코 교회도 설립했다. 청년회가 중심이 돼 스탁톤한인교회를 세우기도 했다. 또 시베리아 거주 한인들을 위해 전도인을 파송하는 등 해외교포 선교에도 남달랐다. 한인 여성들의 독립운동 지원기관인 ‘대한여자애국단’ 설립, 조선독립을 위한 의연금 모금 등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미주 한인의 종교·사회·문화 소통의 장=이 교회는 집 없는 동포들에게 숙식처도 제공했다. 양주삼 목사에 따르면 새로 이민 온 한인들은 거처나 일터를 찾아 떠나기 전까지 교회에 머물며 필요한 정보와 소식을 얻었다. 미국 감리교회 주요 인사들이 방문, 설교 또는 강연을 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국적을 초월해 한 형제자매임을 확인했다. 1907년에는 웨스트민스터사원보다 조선에 묻히기를 원하며 조선 독립운동을 한 호머 헐버트 선교사가 이 교회를 방문, 1905년 고종 황제가 자신을 통해 미국 대통령에게 친서를 전달한 사실을 공개하며 “한인들이 힘쓸 것은 단합이고 단합하기 제일 좋은 것은 예수교”라고 역설했다.

이 교회가 주도해 발간한 ‘신한민보’ 1910년 9월 21일자는 윤치호가 나라사랑의 정신을 담아 작사한 ‘국민가’를 실었다. 이는 우리가 지금 부르고 있는 애국가 가사다. 국민가는 재미 한인들의 각종 집회에서 널리 애창됐다. 한국인 최초로 버클리대에서 사회학학사 학위를 받은 3대 담임 이대위 목사는 신식 한글 식자기를 발명하기도 했다. 한글 식자기는 1915년 3월 11일자 ‘신한민보’를 제작하는 데 처음 사용된 이래 1970년까지 활용됐다.

◇이전 논란으로 고통 겪은 교회=106년 역사 가운데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특히 교회 이전과 관련해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다. 1930년 포웰스트리트에 건축한 성전이 비좁게 되자 1965년 이후 이전 및 발전계획을 세웠지만 20여년간 끝없는 논란에 휩싸였다. 1991년에야 교회 건물 확장 이전 계획을 최종 확정했다. 하지만 이전에 따른 진통이 완전 봉합되는 데는 또다시 3년여 시간이 필요했다. 결국 1994년 5월 지금의 자리에 새 성전 입주와 봉헌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장석헌 장로는 “시련과 치유의 과정을 겪으며 교회의 정체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새 시대에 주어진 사명을 재확인해가고 있다”면서 “하나님 사랑을 민족과 지역 사랑으로 승화시켜나갈 수 있도록 교인 모두가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샌프란시스코=글·사진 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