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철휘 (10) 신길동 작은 개척교회서 만난 믿음의 삼총사
입력 2011-12-08 13:51
명지대학교 기도회에 참석할 때였다. 복음성가를 부르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왈칵 솟구치더니 목에서 뜨거운 무엇인가가 치밀어 올라왔다. 날 위하여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신 크신 사랑에 놀라고 감격했고, 또 그 사랑을 받기에는 내가 얼마나 부족하고 더러운 죄인인가 하는 생각에 참회와 회개의 눈물이 쏟아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나를 택하시고 부르시기 위하여 고난과 역경을 주셨던 것 같다. 대부분 간증하는 사람을 보면 어려운 과정을 겪으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지금처럼 사람들이 자살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다면 나 또한 비슷한 선택을 했을지도 모를 정도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들이었다. 그런 고생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친구인 김충용을 따라서 서울 신길동에 있는 작은 개척교회에 나가게 됐다.
그곳은 공장 지역이라 청년 대여섯 명과 직장에 다니는 여자들 10여 명이 전부였다. 청년부 교인도 별로 없는 워낙에 작은 교회였기 때문에 나는 세례도 미처 받지 않은 상태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맡았다. 그때는 신앙이 아니라 지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던 것 같다. 그리고 1975년 대학교 1학년 여름에 안홍기 목사님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그때 만난 사람 중에 한 분이 DJ정부 때 노동부 장관을 역임한 방용석 장관이다. 나와 김충용, 방 전 장관이 청년부에서 앞장서서 많은 일을 했다. 그때 방용석 전 장관은 군대도 다녀온 집사로서 나와 친구에게 많은 신앙 지도를 해 주었고 어느 회사에서 노조활동을 활발하게 하면서도 하나님 일에는 참으로 열심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그만 개척 교회에서 육군 대장, 노동부 장관, 하나님을 잘 믿는 장로도 나왔으니 교회는 작았지만 영향력은 큰 교회였다고 하겠다.
청년 시절, 좋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잘했다. 그렇다고 나의 어렵고 힘든 생활이 달라진 것은 별로 없었다. 아르바이트도 잘 안 되었다.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고민하던 중이었다. 하루는 서울시 교육청 옆을 지나가는데 초등학교 준교사를 모집하는 공고문이 붙어 있었다. 정교사는 아니지만 준교사가 되면 섬마을 선생님으로라도 취직을 해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열심히 준비해서 초등학교 준교사 자격증 시험에 합격했다.
나는 그길로 곧장 나를 명지대학교에 오게 한 정동준 교무처장님을 찾아갔다. 나중에 명지전문대학 초대 학장을 지내셨고 과로로 순직하실 정도로 충직하시고 좋은 분이셨다. 그분을 찾아가 면담을 했다. “학비는 면제되었지만 생활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어렵습니다. 초등학교 준교사 자격증을 땄으니 학교를 그만두고 섬마을 선생님이라도 가겠습니다.” 교무처장님은 한참 동안 말이 없으시더니 방으로 곰탕을 주문하셨다. 그리고 둘이서 곰탕을 먹으면서 말씀하셨다. “너 여기서 그만두면 대학 다니기 어렵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참아봐라.” 특별한 대책을 주신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용기를 얻고 더 참아 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던 중에 기쁜 소식이 하나 들려왔다. 그것은 바로 2학년 2학기 즈음, 학군단에서 내년도 ROTC 장학생을 모집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이 내 인생을 세 번째 간섭하시는 것이었다. 나를 대학에 오게 하신 것이 첫 번째이고, 하나님을 만나게 하신 놀라우신 간섭이 두 번째였다.
정리=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