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철휘 (8) 인생 바꾼 첫번째 하나님의 간섭 ‘대학 진학’

입력 2011-12-06 20:55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예비고사 제도가 있었다. 예비고사에 합격한 사람만 대학입학 본고사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주었다. 예체능계는 예외였지만 인문·자연계는 반드시 예비고사에 합격해야 했다. 예비고사에서 떨어지면 대학에 응시조차 할 수 없었다. 지금은 S대학교에 몇 명이 들어갔는가가 고등학교의 간접적 평가 기준이 되듯 그 당시는 예비고사 합격자 수가 고등학교의 서열을 결정하는 기준이었다. 선생님들은 어떻게든 자기 학교의 합격자를 늘리려고 애썼고, 대학 진학에 관심 없는 학생들도 합격권에 들기만 하면 무조건 의무적으로 예비고사를 보도록 강요했다.

나는 예비고사를 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지만 선생님의 강요(?)에 의해 인천까지 가서 시험을 보고 합격했다. 그런데도 나는 전기 대학에 응시도 하지 않은 채 군대나 빨리 다녀와 취직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졸업 전 마지막 겨울방학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담임선생님이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명지대학교 교무처장님이 포천 출신인데 공부는 잘하지만 집안이 어려워 대학에 갈 수 없는 형편인 학생을 몇 사람 추천하면 장학생으로 키워 보겠다며 학생을 보내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인생을 바꾸는 결정적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때 나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왜냐하면 당시 소위 일류대학이 아니면 정원을 채우지 못하던 상황에서 명지대의 부름은 그다지 기쁘지 않았다. 그때는 예비고사 합격 여부만 발표할 뿐 개인 점수는 발표하지 않았다.

따라서 대부분 예비고사에 붙은 학생들은 자신이 공부를 굉장히 잘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좋은 대학이 아니면 아예 지원 자체를 안 해버렸다. 시골 출신들마저 자기가 원하는 대학이 아니면 전부 재수를 하는 분위기였다. 우리 학교에서는 나를 포함해 3명만이 명지대에 응시하게 됐다.

나는 마지막까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대학교 등록금을 면제받은 것까지는 좋은데 서울에 가서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대책이 없었다. 그래서 대학에 갈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사정을 잘 아는 선생님들께서 “나중에 성공하려면 꼭 대학을 가야 한다. 지금 대학을 못 가면 영원히 못 가게 된다”고 하시면서 얼마씩 돈을 걷어 입학금까지 마련해 주셨다. 지금 생각해도 무척 감사한 마음이 든다.

또 한편으로는 그때 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워진다. 주변에서 그렇게 나의 미래를 아껴주고 걱정해 주시는데도 나는 스스로 미래를 개척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선생님들의 강한 권유에 의해 대학을 간 것이다. 그때 만약 명지대 교무처장님이 전화를 주시지 않고, 또한 선생님들이 나를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나는 대학에 가지 못했을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되었을까.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는 말씀처럼 나는 이것이 내 인생을 바꾼 하나님의 첫 번째 간섭이라고 믿는다.

정리=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