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유럽인들의 ‘모던 라이프’ 풍속화 등 희귀 자료를 통해 엿보다

입력 2011-12-02 17:40


부르주아의 유쾌한 사생활 / 이지은 / 지안

1848년 3일반이나 걸리던 프랑스 파리∼툴루즈 간 기차여행은 1880년대에 접어들면서 하루거리로 줄어들었다. 19세기 초 시속 15㎞이던 기차 속력이 시속 70㎞를 넘기며 4∼5배나 빨라진 덕이다. 기차가 프랑스 내 모든 도시를 24시간 거리로 가깝게 만들면서, 여행은 일상의 이벤트가 됐다. 연간 단위로 계획되던 여행이 주 단위의 손쉬운 여가활동이 된 것이다.

유럽의 경계도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파리에서 뮌헨∼빈∼부다페스트∼베오그라드∼소피아를 거쳐 흑해 어귀 콘스탄티노플(현재의 이스탄불)까지를 달리는 기차는 유럽이란 지리적 공간을 하나의 시간대로 엮었다. 불편이 없지는 않았다. 열차에 화장실이 없어 용변이 급한 승객은 역마다 내려야 했고, 탈선한 기차가 역사로 돌진하는 대형사고도 빈발했다. 그래도 19세기를 통과하며 기차는 근대인이 주말을 즐기는 ‘세속의 예배당’으로 자리 잡았다.

비단 기차뿐이었을까. ‘모던 라이프’라고 불릴 현대 도시의 많은 풍경은 19세기에 잉태됐다.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에서 앤틱 감정사 자격증을 딴 저자는 19세기 신문, 백화점 카탈로그, 풍속화 등 500여개의 도판과 희귀 자료를 모아 19세기 유럽인의 삶을 들여다봤다. 사람들이 ‘백화점에 드나들고 가구점에서 가구를 사고 만국박람회가 열리고 기차가 달리던’ 19세기 도시의 풍경이다.

21세기까지 이어진 19세기의 발명품은 많았다. 부동산이 황금 알을 낳는 거위로 각광받기 시작한 게 19세기였다. ‘복고풍’이 유행하고, 백화점은 바겐세일로 손님을 끌었으며, 최초의 요리 평론서 ‘식도락 연감’이 첫선을 보인 것도 그 무렵. 달거나 짠맛의 정도, 계절별 재료 선택, 신선도, 식감까지 항목별로 꼼꼼하게 평가한 19세기 판 ‘미슐랭 가이드’의 성공은 ‘요리 아카데미’ ‘요리의 예술’ 등 미식 주제의 전문지로 이어졌다. 대중적 미식 바람의 시작인 것이다.

1852년 조지-유젠 오스만이 시도한 파리 도시재정비 사업은 현대 도시 재개발의 시초가 됐다. 이 과정에서 임대 및 분양 사업으로 막대한 이익을 거둔 페레르 형제는 19세기 판 부동산 신화의 주인공이 됐다. 저자 말대로 “오늘과 뭐가 달라” 놀라게 되는 200년 전 모던 라이프다.

이영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