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철휘 (4) 천안함 폭침 소식에 “주여, 한 사람이라도 더…”
입력 2011-11-30 20:56
천안함이 피격되는 사건이 벌어졌던 지난해 3월 26일은 합참의장 주관으로 교육사령부에서 육·해·공군의 합동성을 강화하기 위한 대토론회가 열렸던 날이었다. 각 군 엘리트급 장군과 장교들이 심도 있게 연구한 내용들이 발표됐다. 각 군에서 고민하고 있는 내용과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가 잘 요약되어 있었다. 일반 대학의 교수 몇 분도 객관적 입장에서의 합동성 강화 방안들을 적절히 조언해 주었다. 각 군 참모총장들의 의견과 토의에 참가한 사람들의 태도도 사뭇 진지했다.
예정된 시간보다는 늦게 끝났지만 모두들 토의의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했다는 표정들이었다. 마지막 순서인 기념촬영을 마친 뒤 합참의 계획대로 그날 참석했던 대상자들 중에서 나를 비롯한 육·해·공군 작전사령관은 부대로 복귀했고, 각 군 참모총장과 민간 교수들만 합참의장 주관으로 만찬을 하였다. 결과론적 얘기지만 작전사령관들을 만찬에 참석시키지 않고 천안함이 피격당하던 순간 자기가 지휘하는 부대에 복귀해 정위치하게 한 것은 참 잘한 조치였다.
“사령관님, 서해안에서 원인미상으로 해군 함정이 침몰하고 있다고 합니다.” 상황장교는 긴장하긴 했으나 우리 작전사령부에서 신속히 조치해야 할 사항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비교적 침착한 어투로 보고했다. 합동성 강화 토의가 끝나고 6·25전쟁 60주년 행사의 일환으로 우리 작전사령부가 주관하는 마라톤 대회를 지원할 업체 대표를 만나고 부대로 복귀 중이던 나는 즉각 참모들을 소집할 것과 합참의 조치를 잘 확인하도록 지시한 뒤 곧장 상황실로 이동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그 큰 해군 함정이 자체 문제로 침몰할 리는 만무하고 틀림없이 적의 소행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군인으로서는 마땅히 그렇게 판단하고 조치해야 맞는 것이었다. 곧 이어 “북상하는 고속 물체를 다른 함정이 사격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는 분명히 적의 기습 공격에 의한 침몰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한편으로 동시다발을 기본 전략으로 하는 적의 수법상 우리 책임 지역에도 무슨 도발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예하 지휘관들의 소집도 지시했다. 확인해 보니 내가 지시하기 이전에 이미 각급 지휘관들은 모두 정위치하고 있었다.
그날 밤은 작전사령부 전 참모와 지휘관들이 필요한 사항들을 조치하면서 참으로 기나긴 밤을 지새웠다. 생존 용사들의 구조 숫자가 하나씩 알려질 때마다 “하나님,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해 주옵소서”하는 기도가 마음속에서 저절로 나왔다. 부대마다 차려진 분향소에는 군 장병은 물론 지역 주민들까지 조문행렬이 이어졌다.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과학적인 사고조사 결과에 대해서도 이런 저런 이유로 의심하는 사람들마저 있었다. 아무리 생각이 달라도 그 아까운 젊은이들의 죽음 앞에서도 하나 되지 못하는 우리의 안보 현실이 서글펐다.
그래서 지금도 천안함 46용사와 고(故) 한주호 준위를 생각할 때면 자꾸 미안한 마음이 든다. 전역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지난 3월 군악 연주회를 할 때 우리 작전사령부 지역에 거주하는 천안함 순직 장병 유가족을 초청해 위로 연주회를 해 드린 것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다. 천안함 피격으로부터 7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벌어진 연평도 포격도발 사건은 또 하나의 아픔이었다.
정리=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