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포 해안길 20㎞’… 차진 파도와 역사의 숨결 저 멀리 새 꿈이 다가온다
입력 2011-11-30 17:41
경북 경주 시내에서 동해안 바닷가 마을인 감포에 이르는 30여㎞를 감포가도라고 한다. 보문관광단지를 지나 토함산 자락에 펼쳐진 덕동호를 굽이굽이 돌아 만추의 풍경이 고즈넉한 추령재를 넘으면 너른 들판이 나오고 찻길과 나란히 흐르는 대종천이 문무대왕릉과 이견대 사이의 동해구로 흘러든다.
겨울 갈매기들의 놀이터인 동해구(東海口)는 ‘동해로 열려진 문’이라는 뜻. 신라의 천년고도 경주에서 가장 가까운 바닷가로 대종천과 동해가 만나는 곳이자 부산에서 동해안을 따라 강원도 최북단인 고성으로 이어지는 해파랑길(688㎞)의 감포 구간이 시작되는 곳이다.
일찍이 한국미술사 연구의 태두로 꼽히는 우현 고유섭(1905∼1944) 선생은 1940년 발표한 ‘경주기행의 일절(一節)’에서 “경주에 가거든 문무왕의 위적(偉蹟)을 찾으라. 구경거리의 경주로 쏘다니지 말고 문무왕의 정신을 기려 보아라”고 권했다. 살아서 당나라 군사를 몰아내 삼국통일을 완성하고 죽어서 해룡이 돼 나라를 지키겠다고 바다에 묻힌 문무왕의 호국정신을 새겨보라는 뜻이다.
문무왕과 관련된 유적은 몽골군이 무게가 100t이나 되는 황룡사 9층탑의 대종을 약탈해 뗏목에 싣고 가다 강에 빠뜨렸다는 대종천을 중심으로 서쪽의 감은사지, 남쪽의 대왕암, 그리고 북쪽의 이견대 등이 트라이앵글을 이루고 있다. 대왕암이 보이는 이견대 아래에는 고유섭 선생의 수필 ‘대왕암’이 새겨진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 기념비와 ‘신라 동해구’ 비석, 그리고 문무왕의 유언비 등이 모여 있다.
이견대가 위치한 감포의 대본리는 자연산 전복 등을 파는 횟집타운으로 사철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어촌. 도로에서 한 발짝만 내려서면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둔 집들이 옹기종기 처마를 맞대고 있고, 바닷가에는 흙 한 줌 없는 커다란 바위 위에 소나무 한 그루가 신기하게도 뿌리를 내리고 있다.
대본리에서 감포항을 거쳐 포항 경계인 연동마을까지 이어지는 감포의 해안도로는 약 20㎞. 대구∼포항 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까지만 해도 관광객들로 북적댔으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잊혀진 바다’로 변해 한적하다 못해 괴괴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지중해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푸른 바다와 울창한 해송 숲의 바람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가수 조미미가 불러 히트를 쳤던 가요 ‘바다가 육지라면’도 시리도록 푸른 감포 바다에서 탄생했다. 1969년 이른 봄에 나정고운모래해변을 찾은 감포 출신 가요작가 정귀문씨는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를 보고 즉흥적으로 노랫말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쓸쓸한 해변에는 ‘얼마나 멀고먼지 그리운 서울은 파도가 길을 막아 가고파도 못갑니다’로 시작되는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나정마을에는 지금은 밭으로 변한 만파정지가 남아 있다. 만파정지는 신문왕이 만파식적이라는 대나무 피리를 얻은 것을 기념해 후세 사람들이 이곳에 정자를 지었다고 전해지는 곳. 만파식적은 해룡이 된 문무왕과 천신이 된 김유신이 신문왕에게 전해준 대나무로 만든 피리로, 이것을 불면 나라의 모든 걱정과 근심이 해결됐다는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해안도로는 전형적인 어촌마을인 전촌리에서 솔밭 속을 달린다. 아름드리 해송 수천 그루가 밀집한 전촌솔밭은 야영장으로 유명한 곳. 솔밭을 벗어나면 전촌솔밭해변과 고등어 낚시로 유명한 전촌항이 나그네들을 맞는다. 2013년 첨성대 모양의 등대가 들어설 전촌항은 여느 항구와 달리 리모델링 공사를 거쳐 도심 속의 공원처럼 깔끔하다.
감포항으로 유명한 감포읍 소재지는 자세히 보면 대부분의 집들이 일제강점기 시절에 지어진 일본식 목조주택들이다. 낡고 허물어져 시멘트를 덧대 수리를 했지만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둔 이층집들에는 이발소 목욕탕 등 정겨운 간판들을 달고 있고 1970년대의 영화세트장을 보는 듯하다.
인천항과 함께 1920년 개항한 감포항은 정어리와 멸치가 많이 잡히던 어항으로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어부들이 대거 건너왔다. 일본인 어부들이 돛대가 3개나 달린 후리배로 고기를 낚아 올리면서 조선인 일꾼들이 몰려들어 감포항은 동해안 최고의 어업전진기지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의 나폴리’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감포항에는 감은사지의 삼층석탑을 본뜬 송대말등대가 우뚝 솟아 있다. 송대말(松臺末)은 글자 그대로 ‘소나무가 펼쳐진 끝자락’이란 뜻. 아름드리 해송이 우거진 송대말 앞 바다는 암초들이 길게 뻗어 해난사고가 잦았던 곳. 1955년 무인등대로 시작한 송대말등대는 1964년 유인등대로 바뀐 후 퇴역했다. 그리고 2001년 새 등대가 만들어져 멀리 수평선을 벗한다.
송대말등대 앞 바다에는 암초처럼 생긴 커다란 바위 하나가 눈길을 끈다. 제주도에서나 볼 수 있는 사각형 모양의 돌기둥들로 이루어진 주상절리로 이곳 사람들도 잘 모를 정도. 주상절리 위에 만든 시멘트 구조물은 일제강점기 시절에 일본인 어부들이 잡은 물고기를 보관하던 곳.
감포항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잡은 해안도로는 오류고운모래해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해병대상륙기습훈련장으로 이용되는 해변은 콩알 크기의 몽돌이 모래와 함께 섞여 있다. 파도가 밀려갔다 밀려올 때마다 나는 몽돌 구르는 소리가 천상의 화음을 연출한다.
해파랑길 감포 구간의 종점은 포항 장기면과 이웃한 연동마을. 태수바위의 전설이 전해오는 감포댐 아래에 위치한 연동마을은 감포 특산물인 자연산 참전복과 말똥성게의 채취 현장. 검은 잠수복을 입은 늙은 해녀들이 하얀 파도를 뚫고 바다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연출한다.
그리고 해녀들이 사라진 푸른 바다에서는 만파식적의 피리 선율처럼 곱고 아름다운 파도소리가 차가운 겨울바람에 실려 감포 해안을 수놓는다.
경주=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