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들 눈물의 성공담, 쉼터를 울리다
입력 2011-11-29 20:02
“부도 맞고 가족 다 뿔뿔이 흩어졌는데 무슨 낙이 있었겠어요. 입소할 때 주머니에 280원밖에 없었는데 한푼 두푼 10년 동안 독하게 1억원까지 모아 땅도 사게 됐네요. 감격스럽습니다.”
10년간 머물렀던 노숙인 쉼터를 29일 다시 찾은 이정우(53)씨는 감회가 새롭다. 서울시가 서울 송정동 ‘서울시립 24시간 게스트하우스’에서 마련한 ‘홈커밍데이’ 행사에 참여한 이씨는 쉼터에서 생활하고 있는 노숙인들에게 자신의 ‘성공담’을 들려줬다.
이씨는 1997년 IMF사태 여파로 서울에서 자신이 운영하던 페인트 가게를 접었다. 서울역에서 노숙하던 이씨는 단돈 280원밖에 없어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기지도 못하다 1999년 ‘노숙인 상담버스’를 타고 게스트하우스에 입소했다. “부산에 내려가 술을 잔뜩 먹고 바닷물에 뛰어들려고도 했었는데 술이 깨면서 이대로 끝내면 안 된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죠.”
게스트하우스에 입소한 뒤 그는 밤낮없이 일에만 매달렸다. 이씨는 “낮에 주로 5만∼8만원짜리 노동일을 했고 16만원을 주는 밤샘 (건물)철거 공사장에도 많이 나갔다”고 했다. 2009년 3월 쉼터를 떠날 때쯤 이씨는 1억여원을 모았다. 현재 강원도 홍천에 3000여㎡ 규모의 땅을 사 고추농사를 짓고 있다.
고추밭 주변에 그는 직접 컨테이너 박스를 개조해 만든 ‘집’도 마련했다. 그는 “고추농사가 잘 안 돼 걱정이에요. 요새도 인삼밭 말뚝 박는 일도 나가고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페인트 가게를 다시 차리는 게 목표”라면서 웃었다.
이씨를 비롯해 노숙생활을 하다 사회 복귀에 성공한 7명이 이날 홈커밍데이 행사에 참여했다. 2006년부터 3년간 게스트하우스에서 생활했던 김모(64)씨는 시 체육시설에서 계약직 일을 맡게 된 뒤 최근 임대주택에 들어간 일을 떠올렸다. 이들은 자신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현재 노숙생활을 하고 있는 30여명에게 들려줬다.
오랜만에 이씨를 만난 한 입소 동기는 “대단한 사람…. 아주 얼굴이 시커멓게 농사꾼 다 됐구만”이라며 이씨를 반겼다. 게스트하우스 유인혁 관장은 이씨에게 “얼마 전 농사지어 보내주신 배추로 김장김치 잘 담가 먹고 있다”면서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씨는 “촌구석에 땅 좀 산 것밖에 없다”면서 한사코 마이크를 잡기를 꺼렸다. 하지만 ‘후배’ 노숙인이 “그래도 뭔 말씀을 하셔야 저희들이 배울 거 아니에요”라며 재촉해 이씨는 얘기를 시작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