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박희선] 진정성이 주목받는 사회
입력 2011-11-29 19:42
연말이 되면서 서점가에 미래 전망을 제시한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번역서로는 앞으로 10년 혹은 20년을 유례없는 경제 암흑기로 예측하는 책들이 많다. 경제 위기에 에너지, 환경 위기까지 겹쳐 인류가 성장이 아닌 생존을 위한 삶의 ‘유턴’을 결단하지 않으면 끔찍한 미래를 맞을 것이라는 경고가 그저 괜한 위협 같지만은 않은 요즘이다.
반면 과학계가 예고하는 미래는 흥미진진한 공상과학영화 같기만 하다. 내년이면 민간 우주 택시가 첫 영업을 시작한다는 소식도 있고, 기상천외한 미래 아이디어 100가지를 연구하는 구글의 비밀 연구소 X가 한 외신에 의해 베일을 벗기도 했다.
많은 전망서 중에 그래도 눈길이 더 가는 것은 2012년 대한민국에 관한 예측이다. 60년 만에 돌아온 흑룡의 해라는 2012년은 대선과 총선을 함께 치르는 정치의 해이면서 베이비부머들의 막막한 은퇴 행렬이 시작되는 고도불안의 해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이 가까운 미래를 어떻게 점치고 있을까. 궁금하던 차에 지난주 서울대 김난도 교수의 2012년 트렌드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김 교수는 올해 최고 베스트셀러인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저자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를 이끌며 매년 날카로운 전망을 펼쳐 보이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미래 분석가이기도 하다.
그가 강연에서 가장 강조한 키워드는 진정성이다. 영문으로 표현하기로는 ‘Deliver true heart’. 진심을 담아 소통하는 자세, 핵심 가치로 승부하는 기업, 자기정체성이 뚜렷한 개인들이 사회의 주목을 끌게 된다는 뜻이다. ‘DRAGON BALL’이라는 단어의 각 이니셜에 함축된 2012년 10대 소비 트렌드 중에서 첫 머리에 놓인 이 테마는 사실 올해를 지배한 트렌드 중 하나이기도 했다. 가수의 핵심 가치, 즉 가창력에 주목한 TV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의 인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강연에 따르면 트렌드란 그저 일회성 유행과는 달라서 일정 기간 지속되며 사회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의미 있는 지표가 된다. 그렇다면 진정성은 올해보다 내년에 더 강하게, 어쩌면 몇 년간은 우리 사회의 화두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진정성이 강조된 사회, 다른 어떤 덕목보다 진실함에 주목하고 이를 알아봐 주는 사회라면 기대해도 좋을 것만 같다. 하지만 이것이 트렌드 키워드로 선정된 이면의 분석을 읽고 나면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말하자면 신뢰를 잃은 우리 사회가 진정성이라는 트렌드를 ‘역발견’해냈다는 분석이다.
생각해보자. 우리는 얼마나 믿을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지. 어떤 관객이 “만약 신처럼 트렌드 하나를 창조할 수 있다면”하고 묻자 김 교수는 “양극으로 치닫는 우리 사회에 하모니를 부여하고 싶다”고 답했다. 내게도 만약 그런 능력이 주어진다면 함께하는 것, 사랑하는 것의 제 1조건, 무조건적인 ‘신뢰 회복’을 들겠다.
박희선 생태여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