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철휘 (3) 축복 속의 전역식… 37년 군생활이 파노라마처럼

입력 2011-11-29 00:41

전역식은 나의 군생활의 마지막 공식행사였다.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장면 한 장면이 슬로비디오처럼 느껴졌다. 부하 장병들의 경례 모습, 우렁찬 예포 소리, 열병식 때 병사들의 눈동자…. 나는 4성 장군으로 군을 떠나면서 그들 앞에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고 눈물을 참고 또 참았다. 그리고 최대한 담담한 마음으로 임하려 애를 썼다. 그런데도 전역사를 할 때는 스스로 느끼기에도 어색할 만큼 감정조절이 힘들었다. 전역사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갈 때 하객들 틈에 앉아 있는 아들, 딸 부부가 언뜻 눈에 들어왔다. 문득 2년 전 취임식 바로 다음 날이었던 아들의 결혼식이 생각나 입가에 엷은 미소가 지어졌다. “결혼식에서 신랑 아버지는 신부 아버지에 비해 특별히 할 일이 없으니 그 자리에는 사진이나 갖다 놓고 당신은 새로 취임한 사령관답게 부대를 지키는 게 어떠냐?”던 누군가의 농담이 떠올라서였다.



행사가 끝난 후에 친지들을 모시고 별도의 다과회를 할 때 비서실에서 나의 어린 시절부터 사령관 시절까지를 7∼8분짜리 동영상으로 만들어 보여 주었다. 그런데 그것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 알 수 없는 뜨거운 감정이 북받치면서 눈물이 쏟아졌다. 시골 소년에서 육군 대장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가면서 그동안 스쳐간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이별, 유명을 달리한 전우들의 얼굴, 40여 회를 넘긴 이사 보따리, 초등학교를 각각 여섯 번과 네 번씩 전학하며 친구들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던 딸과 아들에게 그 흔한 해외유학 한 번 보내주지 못한 미안함 등이 가슴 한켠에서는 또 다른 동영상으로 재생되어 나를 울게 했다.

전역식을 하면서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새에덴교회 소강석 담임목사님께서 참석하여 주신 것이다. 소 목사님은 그 바쁜 와중에도 “일생에 단 한 번인 우리 장로님의 전역식인데 제가 안 오면 되겠습니까?” 하면서 먼 길을 달려서 직접 참석해 주셨다. 그리고 그 주 주일 목양칼럼에 ‘정상 너머의 아름다움’이라는 글을 써 주셨다. 나는 그 글을 읽고 너무나 감사했다. 사람이 정상에 올라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내려오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하면서 전역을 하는 나의 뒷모습이 너무 아름답고 감격스러웠다고 격려해 주셨다. 나는 소 목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아, 이제 내가 가야 할 길은 또 다른 정상 너머의 아름다움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군인으로서의 모든 일정을 다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다시 군에 갈 일이 없다. 그런데도 처음 며칠간은 잠시 휴가를 나온 것처럼 부대가 궁금해지고 전화를 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전역 전 마지막 화상회의를 할 때 나는 이런 조크를 던졌다. “나의 전역을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더라. 왜냐면 자리가 하나 늘어나니까 말이다. 심지어 우리 마누라까지도 기뻐한다. 친 마누라인지 모르겠다.” 씁쓸한 분위기 속에서도 모두 웃었다. 누구보다도 나의 전역을 가장 기뻐한 사람은 아내였다. 군에서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기고 떠날 수 있었고 또한 지금까지 너무 오래 떨어져 있었는데 이제는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가 말했다. “그때 내가 괜히 기뻐했던 것 같아요. 당신이 전역하나 안 하나 혼자 사는 것은 마찬가지인데요, 뭘.” 또 바쁘게 시작된 일상 속에서도 문득 문득 떠오르는 아픔이 있었다.

정리=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