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라동철] 독립영화전용관 필요하다
입력 2011-11-28 17:46
2009년 개봉된 다큐멘터리 ‘워낭소리’는 한국 독립영화의 신기원을 열었다. 관객 1만명이면 흥행작이란 말을 듣는 독립영화계에서 무려 295만명을 모았다. 그에 앞서 개봉된 ‘낮술’과 ‘똥파리’도 각각 2만4000명과 14만명을 동원했다. 2010년 이태석 신부의 헌신적인 봉사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도 50만명 가까운 관객을 모았다. 올해 들어서도 ‘혜화, 동’ ‘파수꾼’ ‘무산일기’ 등이 독립영화의 흥행 바통을 이었다. 최근에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이 1만5000관객을 넘어 순항하고 있다. 이들은 저예산 독립영화일지라도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면 얼마든지 흥행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하지만 몇몇 독립영화들의 약진은 예외적인 사례라고 보는 게 맞다. 제작진이 자본과 권력에 영합하지 않고 주제의식과 독특한 영상미학을 오롯이 담아내는 독립영화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냉혹하다.
지난 25일 ‘사물의 비밀’을 연출한 이영미 감독과 ‘량강도 아이들’ 제작사의 김동현 대표가 기자회견을 열어 극장의 교차상영을 비판하며 저예산 독립영화들에 최소한의 상영 기회를 보장해 달라고 호소한 것은 독립영화계가 처한 현실을 잘 말해준다.
독립영화라고 특혜를 주란 말이냐, 작품만 좋다면 관객들이 왜 외면하겠느냐는 반론도 있지만 이는 현실을 호도하는 것이다. 대규모 자본이 제작은 물론 배급과 극장까지 장악하는 우리 영화판은 공정한 경쟁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시장이다. 수십억원의 순수제작비와 그 절반 가까운 홍보·마케팅비(P&A비)를 쏟아부은 상업영화들이 힘의 논리를 앞세워 상영관을 싹쓸이하다시피 하는 게 현실이다. 제작비 1억원도 감지덕지인 대다수 독립영화들은 작품의 완성도나 재미와는 별개로 개봉 상영관을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독립영화들은 대중의 기호를 철저하게 추종하고 표현 방식이 정형화된 상업영화와 달리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낸 영화들이 많다.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도 하고, 다양한 미학적 가능성들을 시도하기도 한다. 독립영화는 우리 영화산업을 떠받치는 토대이며, 양질의 영화 인력을 양성하는 저수지 역할을 해오고 있는 셈이다. 독립영화들이 관객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넓혀야 하는 이유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직영하는 독립영화 전용관 인디플러스가 지난 3월 서울 논현동에 문을 연 것은 그런 점에서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매년 수백편의 독립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인들이 민간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독립영화 전용관 설립 움직임이 기대를 모으고 있다.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과 안정숙 전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고영재 인디플러그 대표,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심재명 명필름 대표 등 영화인들은 지난 6월 발기인 모임을 갖고 전용관 설립에 본격 나섰다. 내년 초 개관이 목표인 민간 독립영화 전용관 설립에는 상영관 1개 임대료와 운영비 등 4억원가량이 필요한데 상영관 좌석에 이름을 넣어 주는 ‘나눔자리 회원’(200만원)과 일반 소액 후원인 ‘주춧돌 회원’(1만원 이상) 등을 통해 기금을 모으고 있다.
안성기 송강호 장동건 강수연 신민아 임수정 송혜교 류현경 등 배우들도 나눔자리 회원으로 동참했지만 아직 목표액에는 부족하다고 한다. 독립영화들을 안정적으로 상영하고, 영화인과 관객들이 영화를 매개로 모여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될 민간 독립영화 전용관 개관이 기다려진다.
라동철 문화생활부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