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통과 이후] 매머드급 로펌 대거 상륙… 국내 법률시장 잠식 불보듯

입력 2011-11-27 18:14


한·미 경제동맹시대… 어떻게 달라지나

⑤법률·서비스 시장-승자독식 시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국회 통과로 국내 법률시장이 또 한번 요동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10위권 대형 로펌을 모두 합친 것보다 변호사 수나 매출 규모에서 월등히 앞선 초대형 미국 로펌이 빠르게 국내 법률시장을 잠식할 공산이 커졌다.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50대 변호사는 “일본은 시장 개방으로 국제 법률업무 대부분을 외국 로펌에 빼앗겼다”며 “우리 법률시장이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5년 뒤 시장 완전 개방=법률시장은 FTA 발효일로부터 5년 동안 3단계로 개방된다. 개방 1단계에서 미국 로펌은 ‘외국법자문법률사무소’ 등의 이름으로 국내에 사무실을 개설하고, 국제법과 미국법에 대한 자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한국 변호사 고용은 허용되지 않는다. 2년 뒤 2단계로 미국 로펌은 국내 로펌과 업무 제휴가 허용돼 공동으로 사무를 처리하고 수익을 분배한다. 발효일로부터 5년이 지나면 법률시장은 전면 개방된다. 미국 로펌이 토종 로펌과 합작해 한국 변호사를 직접 고용할 수 있다. 지난 7월 한·EU FTA가 발효 이후에도 국내 상륙을 머뭇거리고 있는 영국계 로펌들이 자극을 받아 국내 진출을 서두를 가능성도 크다.

◇토종 대 영·미 로펌, 사활 경쟁=미국 로펌은 우선 토종 로펌이 장악하고 있는 인수합병(M&A) 등 1조원 규모의 기업 법률자문 시장을 빠르게 파고들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1위 로펌인 베이커&매킨지의 변호사가 3774명에 달하는 등 미 10위권 내 로펌 대부분이 2000명 안팎의 변호사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한 해 기준으로 이들 10대 로펌이 벌어들인 수입은 15억 달러(12조원)나 된다. 무엇보다 국내 로펌이 공들여 영입한 한국인 미국변호사를 상대로 미국 로펌이 적극적으로 영입 작업에 나설 경우 국내 로펌이 입을 타격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우수 변호사들이 거액의 돈을 받고 스카우트되면 전체적으로 기업 법률자문 비용이 상승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국내 로펌이 외국 로펌의 관심이 적은 송무 분야(2조원 규모)에 집중하면 소규모 로펌과 개인 변호사의 설 자리가 좁아지는 양극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반면 토종 로펌도 시장개방에 대비해 경쟁력을 쌓아온 만큼 한판 승부를 해볼 만하다는 평도 있다. 법학전문대학원 졸업생이 배출되는 내년부터 향후 10년간 1만6000여명의 신규 변호사가 배출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영·미 로펌이 고용 기회 확대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의료분야도 큰 파장=한·미 FTA 발효는 보건 의료분야, 특히 제약업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오리지널 약의 특허권자가 복제의약품 생산자에게 이의를 제기하면 해당 약품의 허가를 일정기간 중단하도록 하는 ‘허가-특허 연계 제도’가 도입되기 때문이다. 복제의약품 생산자는 허가 신청 시 특허권자에게 복제약 허가 신청 사실을 통보해야 하며 통보 의무는 FTA 발효 후 즉시 발생한다. 이는 미국 대형 제약사들의 신약 특허권 강화를 인정하는 내용으로, 복제약을 주로 만들어온 국내 제약사에 전적으로 불리하다. 복지부는 허가-특허 연계 제도 도입으로 인한 업계의 생산 매출 감소액을 10년간 439억∼950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특허 만료일 이전에 복제약을 시판할 경우를 가정한 것이어서 특허기간을 피해 복제약을 판매하면 손실액은 더 줄어든다는 것이 복지부 설명이다. 허가-특허 연계 제도 도입으로 복제약 생산이 힘들어지면 상대적으로 비싼 오리지널 약을 찾게 돼 국민의 약값부담이 늘어날 것이란 일각의 주장에 대해 복지부는 “이 제도의 적용을 받는 약은 특허가 끝나기 전에 출시하는 복제약이고 특허만료 후 출시하면 상관없다. FTA로 인한 약값 상승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건강보험 등 보건의료서비스 분야는 이번 협정에서 빠져 포괄적으로 개방되지 않는다.

노석조 민태원 기자 stonebir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