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송원근] 시장경제와 도덕

입력 2011-11-27 17:44


‘시장경제에서의 경쟁과 효율’을 강조하다 보면 항상 받는 질문이 있다. “무한경쟁으로 사람들이 피폐해지고 도덕성이 상실되는 것은 생각해 보지 않았느냐?” 이런 질문에는 시장을 강조한 신자유주의가 사람들을 무한경쟁으로 내몰고 무한경쟁 속에 도덕이 파괴되어 가고 있다는 주장이 뒤따른다. 과연 시장에서의 경쟁으로 사람들의 도덕적 의무감이 희박해져 가는 결과를 초래하는가?

‘광우병 촛불시위’부터 ‘한·미 FTA 반대’까지 온갖 괴담이 횡행하는 것은 이런 반시장·반경쟁 정서와 무관하지 않다.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소위 ‘민영화 괴담’이 많은 사람을 자극했다. “의료보험 민영화로 맹장수술에 300만원” “공기업 민영화로 수도 가격이 800배 올라 씻지도 못하게 된다”는 등이 그것이다. 이런 괴담은 최근의 한·미 FTA 반대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런 괴담이 횡행하는 것은 수익성을 추구하는 시장에서의 경쟁은 공공성을 훼손하는 부도덕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정서가 우리 사회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이윤 추구와 자기이익 추구는 특정계층을 제외한 대다수 삶을 피폐하게 만들므로 부도덕하다는 것이다. 사회적 정서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정치인들에게는 무의미한 일일지 모르나 지식인들에게는 의무이다. 이런 정서의 옳고 그름은 역사적 경험을 통해 판단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우리 사회의 일반적 정서와는 달리 시장경제가 발달하고 경제성장이 빠른 국가일수록 민주주의가 꽃피고 도덕적이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자명한 사실이다. 원래 남유럽에 비해 야만적이었던 영국, 네덜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에서 민주주의와 도덕규칙이 확산된 것은 통상의 확대와 함께 시장경제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타인의 인격과 재산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 약속·계약은 지켜야 한다는 것 등의 도덕규칙이 상업과 시장경제의 발달로 확산되었던 것이다. ‘도덕감정론’의 저자인 아담 스미스는 파리를 여행한 후 18세기 당시 상업이 발달했던 런던에 비해 그렇지 못했던 파리에서 약탈, 절도, 살인 등의 범죄가 훨씬 많았음을 전하고 있다. 더욱 극단적인 예는 시장경제가 아닌 계획경제를 따른 동유럽과 구소련, 그리고 북한에서 나타난 국가권력의 무자비한 횡포와 참혹한 인권 상황이다.

그렇다면 시장경제와 도덕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시장경제가 발달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신체적 자유와 재산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타인의 인격과 자유, 재산이 존중되지 않으면 시장에서의 거래도 위축되고 기업도 성장할 수 없다. 이런 도덕규칙이 준수되지 않으면 익명의 사람들 간 대규모 거래는 이루어질 수 없다.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온라인 거래가 일상적으로 그리고 대규모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시장경제의 발달과 더불어 도덕의 발전이 병행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시장과 경쟁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 재산, 계약이 불안정하여 상업적 거래와 투자의 유인이 낮아 경제가 정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20세기 초반 세계 10위의 부국이었던 아르헨티나가 2010년 62위의 국가로 전락한 것은 반시장적인 페론주의의 확산과 더불어 경제적 자유를 신장시키는 도덕규칙의 실종으로 경제가 정체되었기 때문이다.

신뢰가 전제되지 않으면 사람들 간의 거래가 일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또한 시장에서 신뢰를 얻지 못하면 경쟁에 의해 도태되기 때문에 시장에서의 경쟁은 전반적인 신뢰와 도덕성을 높여준다. 공공성을 명분으로 한 경제적 자유의 제약은 경쟁압력을 감소시켜 오히려 사회 전반의 도덕성을 약화시킨다. 이는 역사적·경험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송원근(한국경제연구원 연구조정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