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고통·고난을 ‘보라’… 21세기 한국의 불편한 진실 고발한 다큐
입력 2011-11-24 18:07
이강현 감독의 두 번째 장편 ‘보라’는 산업재해에 무방비인 우리 산업현장의 현주소를 집요하게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다. 열악한 노동환경과 그로 인한 질병들, 무의미한 노동으로부터 탈출을 꿈꾸지만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다큐에서 자주 다뤄지는 소재들이지만 이 작품이 주목 받는 건 이야기를 풀어가는 독특함 때문이다. 영화는 관객에게 공감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답답할 정도로 우직하게 다양한 산업현장을 관찰하고 그곳에서 펼쳐지는 일들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영화는 관객들을 불편함 속으로 밀어 넣는다. 카메라는 보건환경실태 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어느 공장 사무실을 비추다 곧장 어두침침한 작업공간으로 향한다. 굉음이 끊이지 않고, 용접불꽃이 어지럽게 튀고, 숨이 턱턱 막히는 그런 공간이다. 이어 신발 공장, 피아노 공장, 마네킹 공장, 채석장, 딸기농장 등을 찾아다니며 난청, 피부병, 근골격계 질환 등 각종 직업병에 노출된 사람들을 보여준다.
육체노동자들만 조명하는 건 아니다. 서울 용산전자상가에서 일하고 있는 정보기술(IT) 분야 사무직 노동자들도 비추는데 이들도 소외된 노동으로 인해 심신이 피폐해져 가기는 마찬가지다.
후반에 삶의 의미를 다른 곳에서나마 찾으려는 사진 동호회 회원들을 보여주는데 감독은 여기서도 자기 삶에서 소외된 이들의 무기력함을 읽어낸다.
이 감독은 “답답하게 반복되는 삶이지만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을 전달하고 싶었다”며 “이 영화는 특정 사람이나 특정 현장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무언가에 매여 살면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제목은 통증과 고난, 고통 등을 상징하고 멍과 이미지가 겹치는 빛깔 보라에서 따왔다고 한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관객평론가상을 받았으며 프랑스 마르세유 국제영화제, 필리핀 시네마닐라 국제영화제, 이탈리아 토리노영화제 등에도 초청됐다. 상영시간은 136분, 전체 관람가.
라동철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