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캐럴 음반 낸 김동률, 90년대 감성 묻어나는 성탄 음악 선물
입력 2011-11-24 17:46
새 음반을 내놓은 김동률(37)을 만나기 전, 그의 궤적을 더듬다 새삼스럽게 되새긴 흔적들.
①그가 동갑내기 친구 서동욱과 1994년 ‘전람회’ 1집을 발표했을 때 그의 나이는 고작 스무 살이었다. ②그의 정규 음반은 실패한 적이 없었다(음반 수요가 거의 사라진 2008년 발매된 전작인 5집마저도 10만장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여기서 전자는 김동률이 그만큼 음악적 재능을 타고난 뮤지션이라는 점을, 후자는 그가 여태껏 허투루 만든 음반이 없었다는 걸 방증한다. 동료 뮤지션 유희열은 신보 발매를 앞두고 언론에 배포한 신보 소개 보도자료에서 김동률을 이렇게 평했다.
“김동률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유럽의 작은 공방에서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는 장인들이 떠오른다. 음표 하나, 감정선 하나, 숨소리 하나까지 재단하고 다듬는 그의 여전함에 박수를 보낸다.”
이렇듯 매번 공력을 쏟아 붓는 김동률. 이런 이력은 새 음반 ‘김동률(kimdongrYULE)’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소속사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인기를 유지하는 비결을 묻는 질문에 한참을 생각하다 이렇게 답했다.
“그동안 열심히 하긴 했어요. 무엇보다 팬들을 실망시키면 안 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그 분들이 저한테 배신감을 느끼게 되는 상황을 두려워했거든요. ‘김동률 음악 이제 더 이상 못 들어주겠다’ ‘김동률은 돈만 밝히는 것 같다’ ‘그의 재능이 다한 것 같다’…. 이런 말을 듣는 걸 무서워했죠.”
김동률의 이번 신보는 그가 처음으로 발표한 성탄 음반. 앨범명에서 ‘율(YULE)’이라는 글자를 대문자로 표기한 것도 ‘율(YULE)’이 영어로 크리스마스를 뜻하는 옛말이기 때문이다.
음반의 첫 트랙인 ‘Prayer’를 시작으로 ‘크리스마스잖아요’ ‘크리스마스 선물’로 이어지는 곡들 대부분에선 김동률 특유의 꼼꼼함이 느껴진다. 왠지 단명(短命)하지 않고 매년 연말, 사람들 마음을 보듬어줄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을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예전부터 캐럴 음반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캐럴 음반들을 보면 훌륭한 작품이 많거든요. 아무래도 같은 포맷의 음반을 낸 다른 뮤지션들과 비교 되는 음반이니까, 뮤지션이라면 열심히 만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겠죠. 캐럴이 갖는 성격상 편곡을 화려하게 하는 것도 제 취향과 맞는 편이고요.”
앨범에 실린 곡들은 90년대 후반, 혹은 2000년대 초반에 써둔 미발표 곡이다. 스스로 “90년대 스타일 음악에 대한 오마주”라고 말할 만큼 음반의 전체적 분위기는 10여 년 전 우리 가요들이 품던 정서를 보듬고 있다. 그는 왜 이제야 곳간에 쟁여둔 이 곡들을 음반으로 내게 된 걸까.
“옛날의 제 깜냥에 이 곡들을 음반으로 냈다면 부족한 부분이 많았을 거예요. 곡을 처음 쓸 때부터 생각했죠. 언젠가 제가 능력이 되고 원하는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제작비까지 감당할 수 있을 때 음반으로 내자고. 크리스마스라는 하나의 콘셉트로 묶어야지 하는 생각도 예전부터 했고요.”
일반인들에게 김동률 음악이 갖는 개성은 두 가지 점에서 또렷하다. 첫째는 김동률의 묵직한 보컬, 둘째는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 편곡. 음악에 현악을 주된 재료로 사용하는 이유로 묻자 “제가 그런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어 “어릴 때부터 클래식 음악을 좋아했다”고 덧붙였다. “감동이 있는, 가슴을 울리는 음악이 좋았어요. 오케스트라를 사용한 음악은 그런 감동을 유발시키는 데 주효한 것 같아요.”
20년 가까이 음악 활동을 해온 그에게 반복하고 싶지 않은 시행착오를 묻자 TV 프로그램 MC로 활동한 일을 꼽았다. 김동률은 2005∼2007년 MBC 음악 방송 ‘김동률의 포유’를 진행했다. 그는 “번복하고 싶은 과거는 아니지만 후회는 된다”며 웃었다. “정말 스트레스가 심했다” “다시는 TV 진행을 안 하리라 마음먹었다” “곤욕스러웠다”는 말이 이어졌다.
이런 만큼 그는 TV 예능 프로그램 출연에도 난색을 표했다. 최근 각종 예능에 출연해 인기를 끄는 정재형, 이적 등 동료 뮤지션과 자신의 ‘노선’은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는 “동료들이 예능에 출연하는 건 좋게 생각하지만, 나한테 그건 어울리지 않는 옷”이라고 선을 그었다.
실제로 인터뷰가 끝나고 며칠이 흐른 지난 21일, 트위터에 올린 그의 글 중엔 이런 내용이 있다.
“집 앞 편의점의 작은 전광판에 (신보 타이틀곡인) 리플레이 뮤직비디오 내 얼굴이 나오는 걸 보고 흠칫 놀라 재빨리 방향을 꺾어 조금 더 먼 편의점으로… 죄진 것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난 뭔가… 아직 연예인이 되려면 멀었나 보다.”
2008년 열었던 콘서트를 통해 관객 2만명을 모으며 공연계 블루칩으로 떠오른 그는 다음 달 24∼26일 서울 회기동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콘서트를 연다. 이미 표는 티켓 오픈과 함께 전석 매진된 상태다. 공연을 어떻게 꾸밀 건지 묻는 질문에 그는 미소를 지었다. “비밀이에요. 미리 말씀드리면 김이 새잖아요(웃음).”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