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예수방랑기(23)-요나를 재판장에 세워라

입력 2011-11-22 10:28

청년 예수 방랑기 (23)

요나를 재판정에 세워라

1915년 9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나 예수는 미국의 옛 수도 필라델피아를 방문했습니다. 어떤 교단 목사후보 면접시험이 그곳에서 있었습니다.

그 때의 미국교회에는 신학사상의 싸움이 남북전쟁만큼이나 격렬하던 때였습니다. 한 편에서는 이성과 과학을 표준으로 성경을 재해석하는 극단적 진보주의가 기승을 부렸습니다. 그들은 성경에 나오는 기적을 낱낱이 작살냈습니다.

그러나 다른 편에서는 성경을 글자 그대로 믿어야 한다는 근본주의의 역풍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었습니다. 성경의 일점일획도 변개할 수 없다고 버텼습니다.

면접시험장에 들어서니 다섯 명의 면접관이 앉아 있었고 목사안수 후보자 한 사람은 그 앞에 있는 의자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재판정의 삼엄한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물론 나 예수가 그 면접시험장 한 구석에 서 있다는 건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면접시험의 내용은 몇 가지가 있었습니다. 목사로서의 소명, 앞으로의 사역계획, 가정생활, 신학사상, 성경, 정신건강 등입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대목은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설교할 것이냐’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래 수험생은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다가 사흘 만에 살아나왔다는 걸 어떻게 믿고 또 어떻게 설교하려는가?”

어떤 면접관이 그런 질문을 했습니다. 비교적 젊은 얼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요나뿐만 아니라 바로 나 예수를 재판정에 세우려는 음모임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완전히 헛소리이지요. 물고기가 아무리 크다 해도 그 뱃속에서 어떻게 사흘간을 살아남을 수 있습니까? 그건 성경에서 잘라 내야 합니다. 그런 혹세무민이 기독교를 아편으로 만듭니다.”

첫 후보자는 조금 뜸을 들이더니 살기가 느껴지는 음성으로 그렇게 단언했습니다. 과학적 유물론 사상을 배경 삼고 있었습니다.

“이솝우화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여우나 토끼가 말을 했다는 걸 누가 믿겠습니까? 다만 이솝우화가 삶의 지혜를 제공하듯이 요나의 이야기가 주는 교훈만은 귀중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 후보의 대답입니다. 비신화화 해석학을 표준삼고 또박또박 자기주장을 펴나갔습니다.

“저는 상황에 따라 달리 설교합니다. 철학자들이나 과학자들의 모임에 가면 그건 단지 신화적 표현에 불과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시골교회 무식한 회중들에게는 요나가 머리터럭 하나도 상하지 않고 살아나왔다고 할 것입니다.”

상황신학적 주장을 펴는 그 후보자는 우쭐한 태도였습니다. 허지만 거기까지 듣고 있는 나 예수의 마음은 심히 불편했습니다.

“저는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다가 사흘 만에 살아나왔다는 걸 성경말씀 그대로 믿고 설교해왔습니다. 예수님도 그대로 믿으셨지 않습니까? 아니, 심지어 요나가 멸치 뱃속에 들어갔다 살아나왔다 해도 그대로 믿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왜 그만한 일을 못하시겠습니까? 우리가 뭐 죽은 하나님을 믿습니까?”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가 수험장의 천정을 울릴 정도였습니다. 나 예수도 100년 묵은 체증이 한꺼번에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면접관들은 불편한 속내를 얼굴표정에 담았습니다.

한 시간 뒤에 면접고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네 사람 합격과 한 사람 불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떨어진 이는 바로 ‘멸치뱃속’에 들어갔어도 살아나온 그 후보자였습니다.

지난해에도 같은 대답으로 낙방했다는 그는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2십리도 넘는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러더니 교회당으로 들어가 제단 앞에 무릎 꿇고 엉엉 목 놓아 울었습니다. 자신이 강도사(preacher)로 시무하는 교회입니다.

“요나단 강도사여, 힘을 내시오. 하나님 나라 목사고시에서 합격할 사람은 바로 요나단 강도사뿐이라오.”

나 예수는 함께 엎드려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그렇게 위로했습니다. 못 자국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 손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마디 더 덧붙였습니다.

“그 교단 목사고시에는 나 예수도 불합격할 것이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