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친왕과 왕비의 숨결, 유물로 만난다… 재일교포 하정웅씨가 기증

입력 2011-11-21 19:11


“조선왕조 마지막 황태자비인 영친왕비의 숨결이 담긴 유물을 통해 한·일 양국의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교훈으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서울 국립고궁박물관 대한제국실에서 22일부터 내년 1월 31일까지 열리는 ‘순종 황제의 서북 순행과 영친왕·왕비의 일생’ 특별전 유물을 기증한 재일교포 하정웅(72)씨. 전시를 앞두고 21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영친왕비는 왕족의 신분을 떠나 인간적으로 만나 교제했으며 그의 유품을 온전히 간직하다 이번에 공개하게 돼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일본 오사카 출신 재일교포 사업가이자 미술품 수집가인 하씨는 1974년 봄 창덕궁 낙선재에서 미술품 바자회를 준비 중인 영친왕비를 만나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하다 1989년 왕비 사후에 관련 유품을 인수했다. 이후 하씨는 영친왕비 사진, 서신류 등 유품 610건을 2008년 주일본 한국대사관에 기증했으며 고궁박물관이 이를 인수해 이번 전시를 열게 됐다.

전시에는 대한제국 순종 황제가 1909년 1월 27일부터 2월 3일까지 당시 남대문역(현 서울역)을 출발해 평양, 신의주 등지의 한반도 서북지역을 순행한 전체 일정을 기록한 ‘순종 황제의 서북 순행’ 사진첩과 영친왕 휴대용 수첩, 영친왕비 일기 등이 나온다. 영친왕 휴대용 수첩은 영친왕이 일본을 비롯해 유럽과 미주 지역을 순방하며 보고 들은 바를 기록한 노트로 교육제도와 농업의 중요성 등에 대한 생각을 담았다.

또 1919년 한 해 동안 쓴 영친왕비 일기에는 결혼을 한 해 앞둔 신부로서의 설렘과 영친왕에 대한 그리움이 잘 드러나 있다. 일본인인 영친왕비(본명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한국명 이방자)는 1920년 조선 마지막 황태자 이은(1897∼1970)과 결혼한 뒤 줄곧 일본에서 지내다 1963년 귀국했으나 얼마 후 영친왕을 잃고 말년을 쓸쓸하게 보냈다. 전시에는 영친왕 부부의 유년기부터 노년기에 이르는 사진 100여점도 출품됐다.

기증자료 외에도 영친왕비가 창덕궁 낙선재에서 사용한 가구와 생활 소품, 직접 만든 자수병풍과 회화도구 등도 선보인다. 이들 유품은 영친왕비 사후 고궁박물관이 소장 중인 것으로 이번에 처음 공개된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